북한은 오는 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끄는 고위급대표단을 파견키로 했다. 북한이 헌법상 국가수반이자 외교통인 김영남을 내세운 것은 전 세계에 정상국가임을 과시하는 동시에 정상외교를 펼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4일 밤 통지문을 통해 김영남을 단장으로 하고 단원 3명, 지원인원 18명으로 구성된 고위급대표단이 9일부터 11일까지 우리 측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알려왔다.
김영남은 김정은의 뒤를 이어 북한 내 공식 권력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위급 인사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에 비해 실권이 없고, 내부 정치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북한이 명목상 국가수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남을 파견한 것은 국제사회에 정상국가임을 내세우고, 이번 평창올림픽 계기에 방남하는 전 세계 정상급 외빈들의 격에 맞춰 정상외교 활동을 벌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영남은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외무성 부상과 국제부장을 역임한 ‘외교통’으로,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도 대표단장으로 나서 외교활동을 벌인 바 있다. 때문에 이번 평창올림픽에 파견할 고위급 대표단의 단장으로서는 적격 인사라는 견해도 나온다.
이번 평창올림픽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한정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등 주요국 고위급 인사들이 방남하는 만큼, 김영남이 이들을 상대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
전현준 우석대 교수는 5일 데일리NK에 “북한이 김영남을 내려보내기로 한 것은 정치적 의미보다는 외교적인 의미가 많다”며 “비핵화 논의나 깊이있는 남북대화를 염두에 뒀다기 보다는 외교적으로 예우를 갖추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영남이) 외교적으로 상징성있는 인물인 데다 국가를 대표하기도 하고, 올림픽에 국가 대표로 참석한 경험이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며 “또 미국, 일본을 비롯해 유엔과 평화적 외교를 펼치겠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김영남과 함께 오는 단원 3명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만큼 고위급 대표단에 최룡해나 김여정이 내려올 가능성에 여전히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현재 북한 외교분야 실세인 리수용 외교위원회 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등이 단원에 포함될지 여부도 주목된다.
이밖에 대남분야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체육분야 고위급 인사인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일국 민족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겸 체육상의 동행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편, 김영남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은 9일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10일에는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기를 관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방남 기간 동안 펜스 미 부통령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접촉할지,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할 것인지도 주요 관심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이번에 김영남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 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하고 싶다는 김정은의 의사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