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 홍윤표 남측 편찬위원장

“냉전상태에서도 동.서독은 사전 편찬사업을 계속해 왔어요. 우리가 배울 게 참 많아요”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장인 홍윤표 연세대 교수. 요즘 그의 마음은 그리 편치 만은 않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최근의 정세가 혹여나 어렵사리 시작된 사전 편찬 사업에 영향이나 미치지 않을지 걱정이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첫 삽을 뜬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남북이 공동으로 사전을 만든다는 이상의 의미가 그에게 있다.

“일종의 언어 문화재를 발굴, 보급하는 사업이죠. 한 민족의 문화는 한 언어가 대변하는 것이죠. 따라서 그 언어를 통합하고 정리.종합한다는 것은 언어 문화재를 발굴하는 것이지요”

서울문화재, 평양문화재 뿐만 아니라 시골문화재도 다 발굴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남측의 표준어인 서울말, 북측의 문화어(표준어)인 평양말 뿐만 아니라 8도 방언, 민속어까지 망라하는 말 그대로 겨레말큰사전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겨레말큰사전은 오는 2012년 제1권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떤 어휘를 올릴지를 두고 남북은 이미 원칙에 합의한 상태다.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측의 ‘조선말대사전’에 있는 어휘 중 수록가치가 있는 것을 합의해 겨레말큰사전에 싣고, 각 지역의 방언이나 문학작품 속 어휘, 민속 어휘 등을 총망라해서 찾아 올리기로 했다.

“8.15 해방 이후 남북 양쪽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말들을 어떻게 할지가 가장 어렵습니다”

남쪽에서 사용되는 ‘전업주부’라는 말이 북쪽에서는 ‘가두녀성’이라고 불리고, 북쪽의 ‘가락지빵’은 이쪽에서 ‘도넛’으로 불리고 있다.

또 북쪽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제’라는 말은 미 제국주의를 일컫는 반면 남쪽에서는 미국산 제품을 말하고 있고, 우리쪽에서 사용했던 ‘괴뢰군’ 등의 단어도 사전에 넣어야 할지 고민이다.

“우리는 통일사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통합사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남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하나로 묶는 작업입니다”

남북이 서로 자신들의 말만 고집해 사전에 싣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싣고, 대신 남 또는 북에서 쓰는 용어로 표기를 해 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목표로 잡고 있는 사전에 수록할 남북의 어휘 수는 약 30만개. 하지만 이것도 적다는 것이 홍 위원장의 판단이다.

남북 양측은 각 지역의 방언 조사에 현재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각종 문헌에 나타난 새로운 단어도 조사중이다.

조선족이 많은 중국 옌볜(延邊)지역까지도 나가 현지 조사활동도 벌이고 있다. 내년에는 헤이룽장(黑龍江)성, 랴오닝(遼寧)성에서도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러시아의 고려어 사용실태도 조사할 방침이다.

“겨레말이 남북의 말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전 세계에 퍼진 우리말을 다 조사할 것입니다”

남북 편찬위원회는 지금까지 7차 회의를 통해 사전에 올릴 ‘올림말’ 중 ‘ㄱ’ 부분에 어떤 말을 사전에 실으면 좋을지 각각 조사한 결과를 서로 교환했다. 9월 중 열릴 8차 회의에서는 ‘ㄴ’, ‘ㄷ’, ‘ㄹ’ 부문의 조사 결과를 교환할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북은 지금까지 새로운 어휘를 2천개나 찾아냈다. 앞으로 작업이 진행되면서 남북이 발굴할 단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1989년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에게 처음 제안한 것으로, 지난 2004년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사업재개를 요청함으로써 본격화됐다.

지난해 2월 금강산에서 공동편찬위 결성식 및 1차회의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차례 회의가 열렸다.

“언어 연구의 모든 집합은 사전이죠. 사전이 국어학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죠..”

내년이면 정년을 맞는다는 노학자의 눈길은 어느 젊은이 못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눈빛,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겨레말큰사전의 미래를 보는 듯 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