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츠 미 국방장관 지명자 청문회 북핵주목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지명자에 대한 미 상원 군사위의 인준청문회가 5일 열린다.

게이츠 지명자가 미리 제출한 청문회 모두 진술문에선 북한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정책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좀더 구체적인 인식과 정책구상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게이츠 지명자는 과거 중앙정보국(CIA) 국장 인준 청문회 때 정치적 목적에 따른 정보 왜곡 논란과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 논란을 빚은 일이 있다.

그는 그러나 이라크 정책의 실패 책임을 뒤집어 쓰고 물러나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반면(反面) 대타로 공화.민주 양당으로부터 인식되고 있는데다 이번 청문회는 5일 하루만 열리도록 예정돼 있어 제109대 의회가 사실상 문을 닫는 이번주내에 상원 본회의 인준을 받고 빠르면 내주 국방장관에 정식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게이츠 지명자를 새 국방장관으로 고른 이유나, 미 의회와 일반 사회가 게이츠 지명자에게 주문하는 것은 이라크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게이츠 지명자 본인도 냉전시대 소련과 중동 전문가로서, 그동안 기록을 봐도 한국은 물론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에 대한 언급은 단편적인 것 외엔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게이츠 지명자가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관련 군사정책을 어떻게 펴나갈까에 대해선 아직은 ’신중한 현실주의’라는 일반론을 갖고 큰틀만 추론해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일각에선 그가 1994년 시애틀 포스트 기고문에서 북한 핵문제에 관해 “미국의 채찍없는 당근 전략이 실패했다”고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북한이 우리의 경고를 무시할 경우 재처리 시설을 파괴할 것”이라는 경고를 해야한다며 “우리는 불량국가들의 의도를 다시는 과소평가해선 안된다”고 말한 점을 들어 대북 폭격론자로 분류하는 경향도 있다.

그 8년후인 2002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10월28일자 기사에 인용된 게이츠 지명자는 “북한은 누구에게도 급박한 위협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 50년간 아무도 침공하지 않았다”고 당시 부시 행정부 초기의 대북 협상론을 옹호했었다.

게이츠 지명자의 이러한 언급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한 북한과는 협상하겠다면서 핵개발을 부인하는 이라크는 군사공격을 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론에 반박한 것이다.

1994년의 북폭 경고 주장은 당시 클린턴 행정부도 북한에 명확히 금지선을 제시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폭격하겠다는 경고를 북한 정권에 직접 전달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고, 2002년의 대북 언급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게이츠 지명자는 2004년 미 외교협회 연구단으로 내놓은 보고서에선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과 대화를 주장했다.

그는 1996년 낸 회고록에서도 당시 미.소 냉전 상황 위주로 기술하고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나 아시아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1983년 소련 공군기에 의한 대한항공(KAL) 007편의 격추 사건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뤘으나, 역시 미.소간 냉전구도를 설명하는 일환이다.

◇ KAL기 격추사건 회고 요지 = 당시 미국 정보기관들은 소련 공군기 조종사와 지상 관제탑간 교신을 포착해 미확인 비행기에 대한 미사일 발사 명령과 명령 수령 확인, 격추 성공 보고 등을 모두 기록했으며, 조지 슐츠 국무장관의 강한 압력을 받고 이를 9월1일 오전 10시45분 기자회견에서 사용토록 슐츠 장관에게 제공했다.

슐츠 장관 등은 공군기 조종사가 민간 여객기임을 파악했는데 당국이 냉혈하게 격추 명령을 내렸다는 식으로 발표했으나, 미 정보기관들은 교신내용을 계속 분석해 얘기가 좀 복잡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당일 내렸었다.

CIA는 이튿날인 2일 ’대통령 일일보고’에서 소련은 이 사건 거의 전과정에서 미국의 RC-135 정찰기를 추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보고했다.

당시 소련은 KAL기를 포착하기 앞서 최소 1시간 이 정찰기를 추적하고 있었다고 우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약 1시간 후 소련의 수호이 15 전투기가 목표물을 “육안” 관측했다는 보고를 했고, 격추까지 14분간 조종사는 때로는 2km까지 접근하면서 KAL기 주위를 맴돌았으며, 이 비행기를 여객기라고 식별한 일이 없다.

윌리엄 케이시 CIA 국장은 2일 늦게 대통령도 참석한 국가안보회의에서 격추 당시 주변 상공에 미국의 정찰기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정찰기와 KAL기를 혼동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코브라 볼 정찰기가 떠나고 KAL기가 캄차카 반도 동북지역에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고했다.

사실 CIA와 국방정보국(DIA)의 대다수 분석요원들은 소련의 지상 당국에선 KAL기를 (정찰기로) 오인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날이 가면서 행정부의 수사는 사실을 앞질러 갔다. 그때문에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많은 정보가 흘러나오면서, 정보기관들이 정보를 정책수립가들에게 감췄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사실은 소련의 KAL기 식별에 불확실성이 있다는 점은 사건 발생 24시간내에 레이건 행정부 모두에게 알려졌었다.

그 10년후 1993년 유엔조사위는, 소련 극동방위사령부의 최소 2명의 최고위급은 격추 10분전에 그 비행기가 민간기일 수도 있음을 시사했으나 소련군 당국은 KAL기가 미국 정찰기라고 “추정(assume)”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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