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 웃기는 민노당 김선동 당선자

열 살박이 처조카가 넌센스 퀴즈를 냈다. 그 답이 너무 재미있어 크게 웃었다. 상기된 아이가 물었다. “이모부. 재미있어요?” 아이를 살짝 안아주며 “그래 겁나게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아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모부. 재미있는데 왜 겁이 나요?” 아뿔싸. 서울 토박이인 그 아이에게 ‘겁나게’란 표현은 ‘재미있다’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겁나게’라는 말에 다른 의미도 담아 함께 살아 왔다. 이미 알다시피 ‘겁나게’라는 표현은 ‘매우’와 ‘엄청나게’를 합한 의미다. 하지만 그 단어들도 ‘겁나게’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언제부터 그 말이 사용되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게으른 탓이다.


아무튼 ‘겁나게’라는 말과 처조카와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은 민노당 순천 당선자 김선동의원 때문이다. 그 양반 말씀이 ‘매우, 엄청나게’ 보다 더 많이 웃겼는데 이 정도의 느낌을 담아 낼 수 있는 말로 ‘겁나게’라는 표현 이상을 찾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는 4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때 비판하는 것이야 말로 진보주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말 참으로 매우 엄청나게, 아니, 겁나게 웃기지 않는가?


이 양반 이야기를 들으며 민노당 종북주의자들의 북한 옹호론이 막장에 다다르고 있다고 생각됐다. 3백만 명을 전후한 형제들이 아사해 가고 끔찍한 인권탄압이 증언될 때 종북주의자들은 그를 어찌 믿느냐 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미제와 국정원(안기부)의 각본에 따른 것인데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심으로 탈북자들을 조국의 배신자라 새겨두었다. 요즘 이런 논리는 펴지 않는다. 계속 이런 논리를 펴게 되면 UN과 세계의 양심 모두를 미제의 앞잡이로 만들어야 하는데 스스로 억지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다음 나왔던 논리가 이른바 내정불간섭론이다. 3대 세습 등은 그(분)들의 일이므로 우리가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고 자신들도 침묵의 자유가 있는데 왜 대답을 강요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말도 군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좌파에게는 애초에 국경따윈 없다.


보편적 인권이 항상 국경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것이 좌파의 태동이자 전개다. 내정불간섭을 이유로 인권을 외면하는 자는 이미 좌파의 태동과 전개와 그 미래까지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아니 말아먹는 것이다.


민노당에겐 침묵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책 공개의 책임이 지워져 있다. 국민들에게 권력을 달라 하면서 침묵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공약의 언급은 책임이자 의무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게 북한 변수는 어떤 요인보다 큰 까닭에 모든 정치세력은 3대 세습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우리 국민에게 천명해야 한다. 침묵의 자유를 누리려면 당을 해체하고 개인으로 돌아가면 된다.


이제 민노당은 북한문제에 대해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이때 김선동 의원이 혜성같이 등장하여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때 비판해야 진보주의’라고 하며 정말 새로운 변명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그만 그것이 ‘겁나게’ 웃기는 말인 것이다. 


남들이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의 유혈진압을 규탄할 때 비판하지 않는 게 진보인가? 진보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는 것 들어 본 적 있나?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때 비판해야 진보인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앞서 비판해야 진보인 것이다. 누구보다도 앞서 예민하게 독재와 불의을 느끼고 아파하며, 누구보다 앞서 북을 울리고, 누구보다도 앞서 인간됨을 실현하기 위해 신발끈을 조여매고 나서는 것이 진보다.


남들이 독재를 비판하니 난 안하겠다는 것은 독재를 옹호하겠다는 것의 다른 표현인 것인데 민노당 종북주의자들이 좌파를 욕보이더니 이제 진보라는 말까지 능욕하고 있다. 하기야 희대의 인권말살자 김정일부자를 옹호하려면 이 정도의 막무가내와 뻔뻔함은 필수이겠지만 이런 자들과 연립정부를 세우려는 자들은 또 무엇이고, 넋 놓고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저 한심한 초식공룡은 또 무엇인가?


겁나게 웃기고, 또 겁나게 슬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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