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해체→폐기’마다 이익 추구

북한은 북핵 3단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미국의 차기 행정부로 미루고 부시 행정부에서의 비핵화 단계는 현 수준에서 마무리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당분간 6자회담 등에 호응하면서도 불능화의 마무리 조치를 외부의 경제.에너지 지원실적에 맞추면서 시간을 보내고, 핵폐기 문제는 물론 핵신고에 따른 검증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논의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불능화의 완료나 새로운 로드맵을 만드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에 가능할 것이지만, 북한도 11월이면 미국의 새 대통령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도 공식 대통령 후보를 선정하는 전당대회 일정과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새로운 협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3단계 협상에서도 북한은 과정을 여러 단계로 잘게 나눠 이익을 극대화하는 ’살라미 전술’을 들고 나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북한 입장에서 비핵화 3단계 과정은 크게 나눠도 ’핵활동 검증→핵시설 해체→핵물질의 반출 및 핵무기 폐기’ 등으로 3개 이상이다.

특히 검증 단계에서부터 북한이 쉽게 국제적 기준을 충족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이라크 등의 사례에서 보듯 검증은 피사찰국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제약하는 부분이 크기때문이다.

그러나 실효성있는 검증과 특히 고농축우라늄(HEU) 의혹 등 그동안 제기됐던 다양한 의혹의 해소를 위해선 검증단이 신고 유무를 막론하고 조사 대상에 언제, 어디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검증 과정과 대상, 방법 등에 대한 합의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북핵 9.19공동성명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상정하고 있는 만큼 북한은 남북한 동시사찰이라는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북한은 검증을 비핵화 3단계 과정으로 상정하고, 핵무기와 물질 등의 폐기는 그 이후 단계로 여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조성렬 실장은 “미국은 핵신고에 대한 검증문제를 2단계로 간주하고 핵신고의 연장 속에서 검증을 진행하고 3단계까지 가자는 것으로, 핵무기는 빼고 핵물질을 처리하는 것까지 목표로 하는 것 같고, 북한은 검증과정을 3단계로 놓고 핵폐기를 그 이후 단계로 분리하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영변 핵시설의 해체와 핵물질 및 핵무기의 반출.폐기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북한은 그동안 미뤄놨던 ’근본 문제’를 본격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근본문제’ 제기는 미국이 앞으로 북한에 인권,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무기 등을 제기하는 것에 대한 대응의 의미도 있다.

우선 핵시설의 해체 단계에서 북한은 경수로 제공을 요구할 개연성이 크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경수로의 중요 부품의 공급 시점에 핵시설을 해체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었고, 9.19공동성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평화적 핵 이용권의 명시를 강력히 요구, 성명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대목의 삽입을 관철시켰다.

북한의 경수로 제공 요구를 다루는 과정에서 한국이 2005년 제안했던 ’200만㎾ 대북 직접 송전’ 문제가 부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폐기 단계에서 북한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의 이유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공격 가능성을 거론해온 만큼 한미 합동 군사연습의 중단과 대북 안전보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9.19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의 구축과 북미간 수교를 핵폐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미국은 9.19공동성명에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문제는 북한에 이러한 안전보장이 실효성있게 이뤄진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핵폐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북한을 방문했던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북한측 일행이 북핵 3단계의 대상엔 플루토늄관련 시설을 해체하는 것만 포함된다고 밝혔다”며 “북한은 경수로 제공 대가로 진행되는 3단계에 핵물질이나 핵무기는 (폐기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미사일 문제나 북한 인권 문제도 당연히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소개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