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목적 순수성 외면한 채 탄생한 려명거리 미래는?



▲지난 13일 평양 려명거리 준공식이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김일성은 1951년 한국전쟁이 가장 치열하던 무렵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이던 건축가 김정희를 불러 폐허된 평양의 전후복구 계획을 지시하였다. 김정희의 평양 도시설계는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발표된 공산당 선언의 사회주의 도시계획 이론을 철저히 반영하였다.
 
평양 시내의 넓은 공개공지와 녹지, 광폭의 도로, 광장 등은 매연과 소음 그리고 빼곡하게 들어선 콩나물시루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를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종종 평양을 다녀온 일부 인사들은 이러한 모습에 반한 나머지 북한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평양착시’ 현상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2014년 한 재미교포는 평양을 다녀온 이후 평양의 도시와 건축, 더 나아가 북한 체제를 찬양했다고 하여 강제 추방된 일도 있었다.

‘평양착시’는 우연한 일이 아니고 치밀하게 계획된 사회주의건축의 속성이 작용한 결과이다. 인간중심의 건축 기본철학보다는 주체사상의 확립과 사회주의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목적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양은 영화를 찍는 거대한 세트장이나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같은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가령 언론매체에서 비춰지는 대동강변 고층건물 사이의 쾌적한 공원과 광장,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평양시민의 모습이 과연 세계 최하위 빈국이며, 인권 유린국가의 모습이라 느낄 수 있을까?

북한은 자본의 힘보다는 권력의 힘으로 움직이는 국가이다. 과거 김정일의 투쟁적인 권력쟁취와 이 과정에서 건축이라는 통치수단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평양건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날 약 300만 명의 평양시민은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지기반이다. 따라서 평양도시의 발전은 더욱 단단하고 충성스러운 지지기반을 확립하는 것이고, 이것은 안정적인 3대 세습 또한 가능케 했다.

평양을 방문하는 외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평양착시’에 빠져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북한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지우게 만들며, 도시의 여유로움은 그들의 긴장감과 경계심을 해제시킨다. 그 속에서 북한체제 선전물과 온갖 상징탑은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만들며, 또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게 하며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때문에 2017년 4월 13일 북한은 외신기자들까지 초청해가며 려명거리의 완공을 선전하지 않았을까.

평양의 고층건물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창전거리를 시작으로 은하과학자 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에 고층 주거건축물을 공들여 짓기 시작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에는 류경호텔이나 주체사상탑과 같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공들인 반면, 김정은 시대에는 고층 주거건축물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김정일 시대까지는 사회주의국가 성장시대의 체제완성을 위한 건축행위였던 반면, 김정은 시대에는 체제유지를 위한 기반 조성수단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핵보유국의 위상을 얻고자하는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 개발에 관여하는 과학자, 기술자 등 북한 내 엘리트 계층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고급 아파트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의 과학기술 중시정책은 90년대부터 선군정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핵심적인 정책으로 추진된 사상적 선언이었음을 잘 증명해 보이고 있다.
 
려명거리의 완공은 2017년 4월 15일 태양절을 기념하기 위해 맞추어졌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천리마’도 모자라 ‘만리마’까지 동원되었다.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건설이 진행되다 보니 전문가의 한사람으로서 어이가 없다. 최소한의 품질과 안전도 챙길 수 없는 현장여건에서 완공되기는 했지만 건축목적의 순수성이 외면당한 채 탄생한 려명거리의 미래가 불안하다.
 
건축물이 정치적 희생물이 된지 오래된 북한, 인민의 편의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축물이 지어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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