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로 이명박 정부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불법사찰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한 좌파인터넷 신문은 이번 사건에 대해 ‘범MB파’의 소행이라며, 이명박 정부 혹은 그 일부가 ‘범서방파’와 같은 조폭집단과 다름없다고 경멸하고 있다.
내용인즉, 2008년 촛불시위 당시 한 기업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올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사찰을 시작하였고, 이 불법 사찰행위를 청와대의 한 비서관에게 보고하였다는 것이다. 즉 불법행위와 지휘보고계통 이탈이 그 핵심이며, 이것은 공조직을 빙자한 사조직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더 한심한 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쓰나미 같이 한국을 휩쓸던 촛불시위와 그 여파를 ‘사찰’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분노보다는 탄식이 앞선다.
2008년 5월 이후 촛불시위가 전국을 뒤덮고, 매일 밤 세종로와 광화문이 폭력시위대의 난동으로 무법천지가 되었을 때, 이명박 정부는 “눈이 많이 올 때는 쓸어도 소용없다”는 대통령의 ‘인생의 지혜’를 믿었던지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다른 한편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정부공식기관의 판단을 대다수 국민은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이런 공적권위의 공백을 미국산 쇠고기를 극히 위험한 물질이라 왜곡하던 소수의 자연과학자들이 채우면서, 이들의 주장은 인터넷과 언론들에 의해 연일 확대재생산 되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바로 이 무너진 공적권위를 대신할 수 있는 권위를 외부로부터 급히 들여와야 했다. 즉 국제전문가그룹의 회의를 소집했어야만 했고, 이런 조치는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경우 선진국에서는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해서 데일리NK는 정부에 이런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마치 비장의 자연치유법이라도 있는 듯이 공적권위의 공백을 메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점은 여당인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 내정자는 촛불시위를 ‘새로운 정치문화의 효시’라고 극찬하였다. 촛불시위가 끝나고 3개월이 지나서 (사)시대정신과 대한수의학협회가 주관한 국제심포지엄이 촛불시위를 학술적으로 성찰한 유일한 국제행사였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지금까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전혀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진실규명을 위해 책을 낸 사람은 모두 개인들이다. 실로 선진국을 지향한다는 정상적인 정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직무유기이다.
II.
실로 교수와 변호사 출신이 그득한 한나라당이 이처럼 학술적이고 법리적 논쟁이 필요한 문제의 진실규명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그리고 대략 2년 후에 천안함이 폭침되고 광우병 시절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각종 괴담이 난무하고,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가 나서서 유치하기 짝이 없는 허언을 국제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나아가 촛불시위 때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극도로 왜곡했던 자연과학자들이 있었듯이 이번에도 미국의 한 대학에 있는 한국인 물리학자가 천안함 원인규명이 조작되었다고 좌파언론에 주장하고 있다. 민군합동조사단은 그의 주장을 넌센스라고 하지만, 거꾸로 좌파언론은 공식조사보고서를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대의 절반 이상은 천안함의 어뢰폭침사건이 정부의 조작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즉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전체로 볼 때는 30% 가량의 국민이 천안함 폭침사건과 관련 공적권위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대패했다.
그러나 여당과 정부는 젊은 세대의 불신을 청와대와 당에 젊은이를 앞세우면 해소할 수 있다는 대형 착각에 사로 잡혀 있다. 도대체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그 젊은 인재들이 광우병 촛불시위와 천안함 폭침 때 어떤 소통의 노력을 하였는가?
여인들이 화장(化粧)을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서이지만, 화장으로 없는 미모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없는 것을 억지로 꾸며 만드는 것을 우리는 분장(扮裝)이라고 한다. 지금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며 분식회계와 다름이 없다. 즉 문제의 뿌리를 보지 않고 유권자의 기호에 해바라기처럼 따라가는 유약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III.
민군합동조사단에 국제적 전문가 그룹을 참여시킨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공식적 권위를 더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 순간에 사고(思考)를 멈춘 것처럼 진실규명과 설득의 노력을 포기하고 방관자처럼 행동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북한인권법만 해도 그렇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북한인권기록소 설치를 이 법에 포함시키는 것을 포기하였고 그나마 이 법 처리를 방치하고 있다.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 없이 오로지 야당과 일부 국민의 기호와 성향에 아부하고 있을 뿐이다.
또 감사원과 국방부가 천안함 피격후 군의 대응에 대하여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김황식 감사원장과 김태영 국방부 장관 둘 중의 한 명은 옷을 벗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견해가 어긋나고 있다. 따라서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3류 감사원을 갖고 있던지 3류 군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양자 중의 어느 것이 진실인지 이 정부와 여당은 왜 빨리 밝히지 않고 있는가?
그러면서 지방선거에서는 국회의원들이란 자들이 자기 수하를 후보로 내세우는 데에는 열심이었고 그 결과 참패했다. 한마디로 공적의무보다 개인적 영달에만 관심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필자가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말이다.
다른 한편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는 미순이 효순이 사건, 광우병, 천안함 등 사실조작과 왜곡으로 국민을 호도하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생각해 보라! 실체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소통과 설득을 포기한 정부와 여당, 반면에 실체가 없는 왜곡과 선동으로 국민을 규합하고 있는 야당과 좌파시민단체, 도대체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
‘범MB파’라는 조롱은 잘못되었다. 그것은 공적 언론이 사용해서는 안 될 용어이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도 옳지 않다. 조폭집단은 상대방에게 당하면 대응할 생각이라도 한다. 이 정부에는 그런 의지가 아예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