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포로수용소는 제2의 고향”

6.25전쟁 발발 기념일을 앞둔 지난 20일 ’6.18 자유상이자회’ 소속으로 70세를 넘긴 노인 300여명이 경남 거제시를 찾아 감회에 젖어 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신현읍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둘러보고 인근 청소년수련관에서 간단한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50여년전 포로수용소를 경험했던 반공포로 출신인 이들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 없는 거제를 기회가 있을때마다 찾고 있다.

1953년 6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이 단독으로 반공포로 2만2천여명을 석방시켰는데 ’6.18 자유상이자회’는 석방과정 또는 포로생활을 하다 다쳤던 반공포로 출신들이 만든 단체다.

박재만(78.경기도 수원시) 회장도 2년 넘게 거제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하다 6.18 반공포로 석방때 남쪽을 택해 정착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탈출한 반공포로들을 ’반공 애국청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38선 이북인 강원도 회량군 출신으로 1950년 7월 인민군에 징집됐다는 박 회장은 “징집을 피해 산속에 숨어있었는데 가족들이 북한당국으로부터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군복을 입게 됐다”고 그때를 술회했다.

평남 남포와 한·중 국경지대인 함북 강계에서 국경경비대로 근무하던 박 회장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측의 전세가 다급하게 기울자 남쪽전선에 투입됐고 같은해 10월13일 강원도 철원에서 유엔군에 귀순했다.

50여년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제2전선’이 형성될 정도로 출신지에 따라 수용자들 사이에서 갈등과 반목이 심했다고 박 회장은 전했다.

남한에서 살다 전쟁발발 후 인민군에 입대해 붙잡힌 포로 가운데 친공 성향의 포로들이 수용소 생활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이다.

포로들이 맡는 대대장과 감찰 등 간부직을 남한 출신이 독차지하면서 강요에 의해 입대했던 북한 출신 포로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는 것.

친공 인물들이 많았던 남쪽출신 인민군 포로숙소에는 매일 북한기가 올랐고 북한출신 인민군 포로 숙소에는 반공의 의미로 태극기가 게양됐다.

총탄이 난무하는 최전선 못지않게 포로수용소에는 ’생사의 긴장감’이 흘렀다고 박 회장은 회고했다.

이런 경험때문에 ’6.18 자유상이자회’ 회원들에게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회원들은 “처음 공원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와 보니 우리가 고생했을때와 똑같이 만들어 놓아 감개 무량했다”면서 “몸이 불편해 아직까지 공원을 구경하지 못한 동지들도 언젠가는 볼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 등은 미국에서 입수했거나 가지고 있던 수용소 막사와 병원, 중공군, 인민군 여군병사 등이 찍힌 사진 150여장을 거제시에 제공, 공원조성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전 국민이 이곳을 찾아 아픈 역사를 되새기기를 바란다는 박 회장은 “동족끼리 다시 전쟁을 하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우리 세대의 경험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있으면 꼭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1999년 10월 개장한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2만6천640평)은 개장 첫해 9만3천명이 입장했으나 지난해에는 100만명을 넘기는 등 전국적인 역사유적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확장계획이 추진 중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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