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칼럼] ‘초연결 시대’에 북한 주민을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에 '세상과 단절된' 북한 주민 소외되지 않기를

북한 당국이 최근 새롭게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감시 카메라의 모습. 북한은 신의주 주변 국경 일부 지역에 5세대통신을 이용한 감시 설비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데일리NK

지난해 초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세상을 먼저 떠난 딸과 남겨진 엄마가 가상현실(VR) 속에서 재회하는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고인(故人)의 생전 표정부터 목소리, 말투, 특유의 몸짓까지 재현한 고도의 기술을 통해 가상현실 속에서나마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뼛속까지 문과’인 필자로서는 도대체 얼마나 복잡한 기술들이 도입됐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분명한 점은 꿈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일들이 인간의 기술력으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상현실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와 같은 새로운 개념과 기술들이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들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숱한 신기술 중에 북한인권을 위해 쓸 수 있는 게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는 데 그 어느 때보다 혈안이 된 모습이다. 초연결은커녕 연일 주민들에게 세상과의 철저한 단절을 주문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명분으로 국경봉쇄가 강화되면서 중국과의 밀무역은 물론 탈북 길마저 막힌 상태다. 한국에 먼저 정착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려던 탈북민들은 송금도, 국제전화 연결도 어려워졌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이 시국을 틈타 지난해 12월에는 남한 문화콘텐츠를 유포할 시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통과됐다. 이달 말 소집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이른바 북한의 ‘MZ세대’ 또는 ‘장마당 세대’라 불리는 청년층을 겨냥, 사상이완의 고삐를 당기기 위한 ‘청년교양보장법’을 채택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밖에도 국가보위성과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연합지휘부가 전국 단위로 반동사상문화나 불법 휴대전화를 단속하고 나섰다.

북한 주민을 외부문물로부터 차단하려는 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례로 북한이 2015년 개정한 형법 제183조 퇴폐적인 문화반입, 유포죄는 외부 문화콘텐츠 유포자에게 최대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을 부과하도록 했다. 주민들에 대한 공포심 조장이 필요할 때면 시범껨(본보기) 처벌로 정치범수용소 구금이나 공개처형도 자행됐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데이터베이스에는 1950년대부터 2021년 9월 현재까지 ‘외부 정보의 유입·전파·청취 단속’과 ‘외부와의 통신·서신 검열’로 불법구금, 고문 및 폭행, 공개처형 등의 처벌을 받은 사례가 1550건 등록돼 있다.

이처럼 이미 외부문물을 엄격히 단속하던 와중에 ‘사형’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놓은 것은 그만큼 기존의 엄벌만으로는 더 이상 북한 사회 내 사상이완을 막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당국이 끝내 총부리를 겨눠야만 할 만큼 외부 정보에 대한 주민들의 호기심과 갈망이 날로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체제와 이념만으로 억누를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북한 주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설명자료에는 “많은 양의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및 유포할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진=데일리NK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대열에 합류해놓고도 막상 북한 주민들과 연결할 방도로는 딱히 혁신적인 게 보이지 않는다. 동서독 분단 시기에도 있었던 단파 라디오 방송을 오늘날 민간 대북방송사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정부가 중파 주파수를 허용하지 않아 단파 주파수 음질 개선이 큰 숙제로 남아있다. 일부 북한인권단체나 종교단체가 외부 정보를 USB에 담아 유입하던 일도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제약이 크다.

전단을 통해 북한에 정보를 전하는 일은 지난해 말 아예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위법이 됐다. 하필 이 법률의 개정안 입법이 추진된 시점이 김여정의 대남 비난 담화 직후였기에 대북전단 살포 금지가 김여정의 ‘하명’에 따른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싸우는 데 장장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정작 전단 살포가 북한 주민의 알권리 증진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전단을 대신할 새 전략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외부 세상을 엿보는 대가로 목숨까지 내걸겠느냐고 대놓고 윽박지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외부 정보를 누릴 수 있게 하면서도 그것이 ‘다치지 않고’ 이뤄지게끔 하는 일이다. 유엔과 함께 북한 당국의 반(反)인권적 정책에 항의 서한을 보내거나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 당국자들에게 알권리 보장을 직접 요구하는 일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간 경험했듯 외부 정보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를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았고, 그것만으로 북한에 가시적인 정보 자유화를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북한 당국의 술수를 뛰어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4차 산업혁명이란 이름으로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대북 정보 유입에 있어선 어쩐지 냉전 시기의 잔상이 겹친다. 죽은 사람도 가상현실로 재현해내는 시대에 북한 주민에게 닿을 방법이 정말 라디오와 USB, 전단밖에 없을까. 분단이라는 구조적 환경 등 고려해야 할 요인이 적지 않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휴머니즘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초연결 시대’에 탈북한 가족과 전화 연결조차 할 수 없는 북한 주민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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