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하노이 회담 결렬과 김정은 영웅만들기 실패

김정은 베트남 출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방문을 마친 지난 2일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 환송단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역사적인 제2차 미북정상회담이 개최됐기 때문이다. 많은 기대감속에서 시작됐지만 회담은 결렬됐다. 김정은은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월 23일 오후 특별열차를 타고 평양역을 떠났다. 이후 세계의 시선은 김정은의 동선을 따라다녔다. 김정은이 탄 열차는 중국을 종단하며 25일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했다. 이른바 ‘열차정치’였다. 그렇게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세계의 시선을 끌고 하노이에 도착했다. 당시 하노이 회담에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김정은 역시 커다란 ‘승전보’가 준비될 거라 자신했기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하노이행을 알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보인 첫 번째 공식 행보는 외무성 부상 최선희의 기자회견이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을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돌리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는 자리였다.

결과적으로는 하노이 회담은 지도자 김정은의 실책이었다. 미국의 의도를 잘못 읽었든 판세분석이 잘못 되었든 북한 지도자로서 실책이었다. 회담결과와 관련, 태영호 전 영국공사 등 북한체제의 시스템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수령체제 북한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으로 평가했다. 수령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과거 수령인 김일성, 김정일이 수령으로 추앙받기 위해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선전용 이야기틀이 존재해 왔던 것을 상기하면 큰 ‘사건’일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도 ‘수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선전용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북한의 대표적 ‘표준이야기’인 회상기의 이야기틀을 보면 인민들의 ‘수령’에 대한 인식구조를 이해가 쉽다. 수령중심체제인 북한에서 수령의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수령의 행적과 관련한 이야기는 ‘성역’에 해당한다. 북한 대중매체가 특정한 수령 위기극복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인민들에게 학습시키는 행위는 일종의 ‘담론화’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정보의 유통이 자유롭지 않은 북한 사회에서 그러한 전략은 잘 먹혀든다. 특정한 이야기틀에 맞추어진 세계관은 항상 ‘항일투쟁시기’와 현실을 오가며 효력을 발휘한다.

북한의 ‘회상기’는 김일성이라는 아더왕과 빨치산 참가자들이라는 원탁의 기사들이 만들어낸 항일 ‘성전’에 관한 무용담이다. 북한의 빨치산 참가자들은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신생국에서 새로운 가치는 개국영웅의 이야기와 함께 많은 인민들의 입과 귀를 통해 회자되고 수용된다. 일제 말기 한반도에 살던 많은 사람 가운데 일제와 맞서 무장투쟁을 한 경험은 극히 소수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일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의 무의식 저변에는 그 항일빨치산 활동이야기를 소비하고픈 욕망이 있다. 『회상기』는 우리보다 ‘강하고’ ‘큰 적’을 상대로 승리한 수령의 영웅 설화다.

북한의 현실 이면에 존재하는 ‘메타현실’로서 『회상기』 항일무장투쟁 경험은 영웅서사 방식의 ‘분리-전이-결합’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보편적 영웅서사 패턴의 구조다. 『회상기』속에는 북한 체제가 위기담론의 원형으로 꼽고 있는 1930년대적 위기상황이 그려져 있다. 즉, ‘위기-극복-승리’라는 도식이다. 이러한 구조는 김일성의 개인회상기인 『세기와 더불어』에도 잘 나타나 있다.

김정일 역시 ‘선군정치’를 제시하면서 과거 1960년대부터 진행된 미북갈등 상황과 위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등 제국주의 압살정책을 버텨낸 것을 ‘수령’의 위훈으로 선전했다. 김일성이 ‘항일(抗日)’의 수령이라면 김정일은 ‘항미(抗美)’의 수령이었다. 반면 김정은으로서는 ‘수령’에 걸 맞는 영웅적 업적을 이룩한 바가 없다. 2017년 ‘국가핵무력 완성’ 이외에는 말이다. 핵무력이라는 보검을 들고 나선 것이 미북정상회담이라고 봤을 때 하노이 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것은 수령업적에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김정은체제가 제도적으로 안착된 것으로 보이지만 ‘수령’ 김정은만의 ‘영웅담’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역시 현재진행형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하노이 회담결렬은 김정은에게 더욱 뼈아프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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