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알맹이 없는 북러회담과 김정은의 현실 인식

김정은 푸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최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북한의 ‘국가경제발전전략’ 기밀자료를 입수, 보도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으로 인해 북러 관계에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신문이 입수한 자료 중 특별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5년 전 북한 경제일꾼들은 2020년 들어 러시아와의 무역량을 10억 달러 수준을 달성하고, 중국과의 무역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고 예상한 듯 보인다. 당시에 북한 간부들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바로 2014년 러시아 원동개발상 갈루슈카는 2020년에 북러 무역량 10억 달러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대다수의 민간 전문가는 이 같은 관측에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역 구조를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장관이 8배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 무역량은 지금 어떠한가. 2014년의 2/3 수준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필자는 당시 북한 측이 러시아 측의 약속(?)을 어느 정도 믿더라도, 이 만큼 진지하게 믿지는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이니치신문의 자료는 당시 북한 당국자들이 러시아에 대한 착각과 환상이 매우 많았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북러정상회담을 보면, 북한의 이러한 착각이 옛날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과 김정은은 서로 회담에 대한 열정이 별로 없고, 정상회담을 매우 상징적인 행사로 보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어느 나라든 정상회담 대부분은 상징적인 성격이 강한데, 이번에 북러 양측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한 쇼도, 노력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정상회담 이후 양측이 형식적인 공동선언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생각보다 의미가 있다. 선언이 없다는 것은 양측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북러 양측은 회담이 있을 때마다 철도연결, 천연가스 파이프 건설, 무역규모 확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 왔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선언이나 발표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철도연결이나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은 현재 국제정치상 이루어질 가능성도 거의 없으며, 무역규모 확대도 양측 무역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실현되기 어려운 난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분위기를 위해 계속 거론돼 왔다. 이번에 이러한 이야기가 담긴 공동성명이나 발표조차 없었던 것은 조금 이례적인 일이다.

필자는 이번 북러회담에서 그나마 의미가 있는 문제는 아래 3가지 정도라고 생각한다.

먼저 ‘6자회담’이다. 푸틴 대통령은 중지된 지 10년 된 6자회담 재개에 대해 언급했다. 다만 이는 놀라운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6자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이야말로 러시아의 취약한 입장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나 의지가 더 많았다면, 다자회담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다자회담에서는 참가국 간의 영향력 차이가 별로 심하지 않고, 모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 러시아는 당연히 북한의 미래와 동북아의 미래에 영향력을 미칠 필요성을 느끼지만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할 생각은 없다. 따라서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회담은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매우 저렴하면서 효과가 높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이 6자회담에 관심을 표시하더라도 회담은 곧 개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로 기자회견 때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회담내용을 앞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당국자들에게 전달해 주겠다고 했다. 이는 러시아가 어느 정도 중개인의 역할을 할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미러 관계가 매우 나쁜 것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중개인의 역할을 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비건 미국 대표는 회담 전에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러시아 측과 사전 협의를 잘 했다고 한다. 미러 관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외교관과 전문가들의 비건에 대한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좋다.

셋째로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체제안전 보장을 받을 경우에만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체제안전 보장은 현실성이 거의 없는 계획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불가침 약속을 한다고 해도, 북한 엘리트 계층은 외부의 위협뿐만 아니라 내부의 위협으로부터도 체제를 지켜야 한다. 인민봉기나 쿠데타, 다른 내부 동요가 생겼을 때 그리고 이 봉기를 참혹하게 진압할 때 외부세력의 개입을 막을 수단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이 있다면 외부세력은 감히 개입하지 못할 것이지만, 만약 비핵화를 한 북한에서 인민봉기와 참혹한 진압이 생긴다면 국제사회는 R2P(보호책임) 원칙에 따라 리비아처럼 개입할 것이다. 북한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핵무기는 다른 대안이 없는 유일한 체제 안전 보장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북한이 체제안전 보장을 언급한 것은, 아마 체제안전 보장을 중심으로 하는 장기적인 다자회담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다자회담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안전 방법을 당연히 마련할 수 없다. 다만 북핵문제 관리에서 가치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2019년 4월의 김정은 집권 이후 최초의 북러 정상회담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성이 부족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적이며 상징적인 행사였다. 양측은 이 사실을 많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는 변함없이 착각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 측도 러시아에 대한 낙관주의로 가득했던 2014~15년보다 훨씬 더 현실주의적으로 러시아를 보게 된 것 같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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