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북한 자력갱생 강조의 겉보기와 속내

김정은 백두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가 지난 10월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과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 현장을 방문(일자 미상)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삼지연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 앞에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더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이 그대로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하면서 ‘우리는 적들이 우리를 압박의 쇠사슬로 숨 조이기 하려 들면 들수록 자력갱생의 위대한 정신을 기치로 들고 적들이 배가 아파 나게, 골이 아파 나게 보란 듯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앞길을 헤치고 계속 잘 살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다른 보도 매체들도 ‘자력갱생이야말로 국가건설과 활동에서 중핵 중의 중핵이며 일관되게 견지하고 구현해 나가야 할 항구적인 노선’(9.17, 노동신문), ‘자력갱생과 자립적 민족경제는 우리 식 사회주의의 존립과 기초, 전진과 발전의 동력, 혁명의 존망을 좌우하는 영원한 생명선’(12.10, 노동신문) 등으로 연일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자력갱생 원칙은 지난 1960년대 중소분쟁으로 중국과 소련의 원조가 삭감되면서 5개년 계획 추진에 차질이 생기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원칙이다. 그 뒤 북한은 이 원칙에 입각한 자립적 민족경제의 건설을 경제정책의 기본노선으로 삼아 왔다.

그런데 북한이 새삼스레 연말을 앞두고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이유는 1)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북미협상 시한이 다가오는데다, 대북제재 조치 일환으로 주요 외화수입원인 북한 해외노동자들의 귀환으로 경제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2) 경제난 원인을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 탓으로 돌리는 한편 내부적으로 자력갱생 방식으로 ‘인민생활 향상’을 제시하여 체제를 결속하려는 의도이다. 위기에 봉착한 독재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른바 ‘내부 위기의 외부 전가(轉嫁)’ 수법이다. 여기까지가 최근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겉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속내」는 무엇인가?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중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절대권력을 부자 세습하는 체제이다. 한 마디로 정당성이 없는 권력인 것이다. 이처럼 정당성을 결여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은 ① 백두혈통 지도자의 당위성을 주입하는 사상통제, ② 국가보위성 등 공안기관을 통한 감시통제, ③ 생존과 직결되는 주택과 식량을 중앙에서 공급하는 배급통제 등 3개 방향의 통제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냉전 체제가 무너진 이후에도, 북한에서는 사상통제와 감시통제의 메커니즘이 별다른 문제 없이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배급통제가 붕괴했다는 것이다. 배급통제 붕괴로 나타난 비극이 지난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이다. ‘위대한 지도자’도 어쩔 수 없었던 이런 위기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장마당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근 500개에 이르는 장마당에서 의식주에 필요한 대부분을 해결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외부정보를 접하고 사유재산 개념도 형성됐으며, ‘장마당이 노동당보다 세다’는 농담을 하기에 이르렀다. 집단주의, 전체주의를 요구하는 당국과 주민들의 의식 사이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이런 괴리는 어떤 계기가 마련된다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2009년 11월에 있었던 화폐개혁이다. 당시 북한 당국은 장마당 경제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 속도도 빨라지자, 계획경제체제를 다시금 강화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그간 모아둔 돈이 휴지가 되고 물가까지 폭등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박남기 재정부장을 처형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장마당이 노동당을 굴복시킨 것이다.

북한 당국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같은 시한폭탄은 방치할 수 없으며, 어떻게 하든 ‘배급통제’ 시스템을 회복시켜야 한다. 최근 북한이 자력갱생 원칙–북한 경제를 끊임없이 추락시켜 온-을 새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시각에서 비롯된 「속내」인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자력갱생 강조는 언제나처럼 또다시 도로(徒勞)가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신문(12.12)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농업부문 다수확운동·수산부문 황금단풍·가을풍작 등을 언급하면서, 특히 “지난 5월 서해지구 수산단위들에서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2배 이상 실적을 냈고, 동해 전역의 미더운 어로 전사들은 12월 7일까지 14만여 톤의 높은 어획고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14만 톤이라면, 북한 주민 약 2500만 명에게 1인당 5.6㎏씩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그것도 ‘다시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한 경애하는 지도자의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물고기들이 모든 주민들에게 공급됐다는 기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평양 시민들에게만 공급했다고 노동신문(12.19)은 선전하고 있다. 결국 ‘14만 톤 어획량’이 가공의 수치라는 것이다.

‘자력갱생이 실패할 수 있다’는 반증은 또 있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12.14)은 내각이 최근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소집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목표수행을 위한 지난 4년간 사업 정형 총화(결산)와 다음 해 대책에 대하여 토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재룡 총리와 토론자들은 “내각을 비롯한 경제지도기관 일꾼들이 당의 구상과 의도에 맞게 경제작전과 지도를 바로 하지 못하고 부닥치는 난관을 자력갱생 정신과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뚫고 나가지 못한다면 당 앞에 다진 결의를 실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자력갱생의 당위성과 성과’를 선전해온 것과 달리, 지난 70년간 추진해 온 자력갱생의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를 보여준 지적이라 하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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