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4월에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를 진행했다. 대규모 인사이동이 단행됐고 세대교체도 이루어졌다. ‘김정은 키즈(?)’라 불릴만한 군수공업 및 과학자 그룹이 대거 중앙무대로 진입했다. 그 가운데 김재룡 전 자강도 당위원장이 총리로 기용된 점이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이었고 그 배경과 관련, 올해 신년사부터 ‘군수분야가 민수를 도와야’ 한다는 김정은의 언급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부터 소위 ‘자력갱생형’ 경제발전을 강조하면서 군수경제가 민수경제를 도와야한다는 언급이 잦아졌다. 그만큼 현재 북한의 경제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반증이다. 어쩌면 ‘제3의 고난의 행군’을 대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난과 굶주림’의 일상, ‘적들로부터의 포위’라는 『회상기』 전편에 떠돌고 있는 주문이 되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가난과 굶주림’이 ‘외부 적대세력’의 압제에서 기인한다는 논리는 북한에서 고난극복 ‘제1의 레토릭’이다. ‘저항정체성’을 담고 있는 『회상기』의 주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수령적 행위의 ‘절대성’과 ‘반외세’, 나아가 ‘주체’로 귀결되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회상기』는 북한체제가 갖고 있는 ‘경로종속성’의 원형을 담고 있다. 수령이 외부세계와의 투쟁을 통해 일정한 전리품을 획득하면 일반 인민들은 수령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고 부지불식간에 ‘채무자’로 전락하게 된다. 북한체제에서 수령과 인민 간의 수혜담론은 이렇게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항상 모든 인민들은 수령의 은혜를 입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현재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도발’과 식량지원 원조 움직임의 패턴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원조품들은 김정은의 치적으로 선전되면서 또 하나의 ‘선물’로 포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회상기』는 김일성 시기의 ‘원조’ 고난의 행군시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김정일 시기에 제2차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쳤다. 당시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회상기』는 한 차례 증보판을 발행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김정은 시기에 접어들면서 또 한 차례 개정판을 발행했다.
‘원조’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시절,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중국 몽강현(현재 중국 정우현) 남패자로부터 압록강 연안 북대정자로 향한 행군을 말한다. 일제에 포위된 빨치산들이 굶주림 속에서 행군한, 성경의 ‘탈애굽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반면, 김정일 시기 ‘제2의 고난의 행군’은 확장된 정치지리적 환경에 기반한다. 당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외부환경적 요인, 그중에서도 미국과 일본이 몰고 온 결과라는 인식과 함께 그 고립자체를 ‘성스러운’ 것으로 스스로의 ‘가난’과 ‘고립’을 자랑스러운 것으로 규정해 왔다.
북한의 경제난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일상이었다. 물론 여기서 평양 등 특수 지역의 사례는 예외다. 그동안 북한은 일상화된 ‘굶주림’을 타파할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 개혁개방이나 체제개혁 등의 방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상기』에서 묘사하는 1930년대 빨치산들의 생존방식 역시 ‘경제모연공작’이라 불리는 형식의 ‘강탈’이었다. 빨치산이 외부세계에 가하는 행위는 무조건 정당한 것이었다. 국제사회로부터 ‘구걸’ 혹은 ‘강탈’ 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북한의 태도 그 이면에는 항일빨치산 활동부터 습득된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과 그에 따른 도덕적 우월감과 자기합리화의 메커니즘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굶주림 속에서도 ‘무기’를 숭상하는 풍토의 시원은 김일성의 회상기인 『세기와 더불어』에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1926년 김형직이 김일성에 남긴 유물과 관련이 있다. 『세기와 더불어』에 따르면 김정은의 증조부인 김형직은 김일성에게 《지원》사상, 3대 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 두 자루의 권총을 남겼다. 여기서 ‘고난의 행군’과 관련하여 눈여겨 볼 부분은 ‘3대 각오’와 ‘두 자루의 권총’이다. 3대 각오는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를 말한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두 자루의 권총을 물려받았다. 김일성은 김형직에게서 받은 ‘두 자루의 권총’을 김정일이 10살 나던 해인 1952년, 붉은 천에 싸서 선물했다고 북한은 선전하고 있다. 조만간 북한은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이 두 자루의 권총을 전달한 ‘역사적 사실’을 적절하게 구성해서 선전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현재 세계사적 흐름은, 과거 1930년대 그것과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 정도로 천지개벽한 상태다. 그러한 와중에, 북한은 2019년 현재 ‘핵’을 통한 사회주의강국건설과 ‘자력갱생형 경제’를 강조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전 인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1990년대 김정일 체제가 들어서면서 제2차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고 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한미 등 주변국과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대외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김정일 체제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극복한 것을 김정일의 업적으로 숭상했듯이 현재 김정은 역시 ‘핵무력 완성’을 경제적 보상으로 치환시키면서 ‘제3차 고난의 행군’을 시작과 동시에 최대한 짧게 끝내고 이것을 지도자로서 자신의 업적으로 삼으로 할 것이다. 그래야 북한 지도자로서 ‘전집’ ‘선집’ 등 소위 ‘로작(勞作)’에 들어갈 이야기 거리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