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의 슈바이처’…김정용 개성병원장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며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국제 의료구호단체인 YMCA 그린닥터스가 후원하는 개성병원의 원장을 무보수로 맡고 있는 김정용(50) 병원장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몸으로 실천하며 북한땅 개성에서 새로운 한국의료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2005년 12월 개성병원에서 봉사를 시작한 그는 작년까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1만3천여명의 몸 아픈 근로자들을 치료했고 올해부터는 북쪽의 의사들과 손잡고 4천700여명의 환자를 돌봤다.

특히 개성공단에서는 근로자들의 작업중 발생하는 외상과 고향땅을 떠나 외국에 나가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생기는 피부와 장의 과민증상인 알레르기 환자가 많다는 후문이다.

남북 양쪽에서 각각 3명씩 총 6명의 의사들이 함께 진료를 하고 있는 개성병원은 이러한 남북한의 근로자들을 괴롭히는 질병이라는 공공의 적을 대상으로 힘을 합치고 있다.

김 원장은 “이제는 남북한이 그냥 공허한 교류가 아니라 전문성을 가지고 그 내용으로 교류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며 “개성병원은 그러한 것을 실험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남북 양측의 의료진이 합동근무를 시작할 때는 서로 말을 걸기도 서먹했지만 이제는 X-선 검사지를 보면서 남북한 의사들이 토론을 하고 간단한 외과수술을 할 때도 서로 힘을 합치면서 그 누구보다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가 되고 있단다.

김정용 원장은 개성에서 의료봉사를 하기 전에 부인과 함께 인도에서도 7년간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개성병원 이야기를 듣고 인도에서의 활동을 접으면서 나의 결정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도에서는 아무래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지만 개성에서는 북측 의료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해 진료활동을 하기가 쉽고, 인도에서는 외국인에 대해 의사면허 제한이 있지만 개성은 그러한 제약이 없어 좋다는 것.

김 원장이 개성행을 결심하면서 가족들은 국제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부인은 인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두 아들은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에 나와도 마땅히 갈 데가 없어서 거의 개성에서만 생활하고 있다”면서 겸연쩍게 웃으며 개성병원이 자기 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용 원장은 개성이 자신이 꼭 있어야 할 곳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열대의학을 전공하고 말라리아를 연구해 국제의학저널에 실리기도 한 김 원장은 진료실 한 켠에는 고배율 현미경을 놓고 말라리아 병원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말라리아는 이제 점차 희귀한 질병이 되고 있어서 환자를 보기도 어려운데 북쪽과 비무장지대에서는 여전히 말라리아라는 전염병이 말썽을 부린다”며 “직접 이 병을 보면서 예방을 위한 해법도 찾아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의사로서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되고 있는 개성공단에서 본 남북관계에 대한 소회를 묻자 한참을 주저하던 김 원장은 작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핵실험이 있고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이 채택된 뒤에 남한과 북한 당국은 물론이고 기업들까지 ‘힘을 합치자’고 단결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며 “마치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정용 원장은 북쪽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을 공경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순박함을 느낀다며 “서로가 100% 이해하기는 힘들고 문화적으로 충격을 받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시간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개성에서 생활하는 지혜를 소개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고종 때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황제의 시의(侍醫) 및 외교고문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의료기관인 광혜원을 세운 H.N 알렌을 떠올리며 “의술을 통해 개성에 새로운 역사의 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2008년이면 그린닥터스에서 150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을 세울 계획”이라며 “의술을 통해 남북한이 하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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