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관광 사업자 놓고 남북갈등 ‘2라운드’

북한이 우리 정부에 개성관광 사업자를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개성관광을 둘러싼 남북 갈등이 작년에 이어 재연되게 됐다.

애초 현대아산과 개성관광 사업을 하기로 했던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위)가 작년 8월 말 돌연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에게 개성관광을 제안, 사실상 거절당하자 이제 와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개성관광 사업자 변경을 놓고 북측이 롯데관광을 끌어들이면서 현대아산과 갈등을 빚은 작년 상황이 1라운드라면 정부를 상대로 고집을 피우고 있는 현 상황은 2라운드인 셈이다.

북측은 지난 5월부터 ’개성관광은 롯데관광과 하기로 했다’면서 우리 정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가 ’계약 당사자 간 합의로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한 사업자 변경은 어렵다’면서 부정적 입장을 취하자 개성관광 전면 금지를 내세워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북측의 의중은 차치하고 올해 상황은 지난해와는 약간 다른 듯하다. 롯데관광이 북한과 만나 보겠다며 정부에 방북을 신청했고 정부도 이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롯데관광과 현대아산 간에도 물밑 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처럼 두 회사가 공동사업자로 나설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 현대아산-롯데관광 협력 가능성에 ‘주목’ = 북측이 현대아산에 대한 신뢰와 자금력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고 또 1년 가까이 롯데관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북측이 당장 ‘롯데관광을 선호하는’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방침은 단호하다.

통일부 김천식 남북경제협력국장은 21일 “현대와 북측 간의 합의는 정당하게 이뤄진 유효한 계약이며 이를 승인한 정부 조치는 합법적이며 구속력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현대아산과 계약을 유지하면서 롯데관광과 별도의 계약을 하더라도 법적으로 협력사업은 승인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교류협력법 제17조는 협력사업 승인요건으로 남북한 간 분쟁사유가 없고 이미 시행 중인 사업과 경쟁을 유발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을 만나 이 같은 정부 입장을 직접 전했다.

주목되는 것은 롯데관광의 행보다.

롯데관광은 작년 10월 북측의 제안에 대해 ▲북한이 국제 비즈니스 규범을 준수하고 ▲현대와 맺은 계약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며 ▲정부가 사업자 변경을 승인하고 ▲국내 정서가 현대가 아닌 롯데관광의 개성관광 추진을 받아들일 때에만 개성관광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혔었다.

롯데관광 관계자는 “지금도 당시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면서 “정부 입장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관광이 정부 입장을 장관에게서 들은 이후인 지난 5일 ’북측이 어떤 얘기를 하는 지 들어보겠다’며 방북을 신청하면서 개성관광 실시 의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이를 승인했지만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가 난기류에 빠지면서 롯데관광은 방북을 취소했다.

일단은 보류했지만 언제든지 다시 올라가 협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현대아산과 롯데관광도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내용이 주목된다.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과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의 회동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두 회사가 개성관광 사업에 대해 손을 잡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현대아산은 금강산관광을 한국관광공사와, 개성공단사업은 한국토지공사와 함께 하고 있어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따라서 현대아산이 사업 주체로서의 지위는 유지하되 실무는 롯데관광이 맡는 방향으로 의견을 조율하면 교류협력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북측과 사업자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부도 이 방안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이를 권고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아산과 롯데관광은 협력이라는 대 전제에는 동의하면서도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 北, 왜 사업자 변경 원하나 = 2000년 8월 현대와 이른바 ’경제협력에 관한 7대 합의서’를 맺고 개성관광을 현대에 맡기기로 했던 북한이 사업자 변경을 요구한 것은 작년 8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측 아태위 관계자는 당시 ’2005 평양오픈골프대회’ 참관차 평양을 찾은 롯데관광 김 회장에게 개성관광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구두로 한 데 이어 9월에는 서면으로 이를 공식화했다.

이 때는 정주영-몽헌 부자를 보좌하며 사실상 현대 대북사업의 좌장 역할을 한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이 각종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명예 퇴진한 직후다.

당시 현 회장이 김윤규 전 부회장을 대동하고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직후 김 전 부회장을 내침에 따라 북한측이 ’배신’이라며 분개하고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와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현대아산의 개성관광 사업권을 박탈하려 한다는 해석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었다.

하지만 김 전 부회장의 경질이 북측의 태도 변화를 겉으로 드러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실상은 개성관광을 현대아산에 줘봤자 돈벌이가 시원치 않을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했다는 분석이 더 타당해보인다.

실제 지난해 8월 말과 9월 초에 걸쳐 개성 시범관광이 3차례 성사되기까지 현대와 북측은 관광 대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표출했다.

당시 북측은 관광대가로 1인당 150달러를 요구했지만 현대아산은 그렇게 줘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이를 계기로 북측이 개성관광은 현대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굳혔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경협사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북측이 롯데관광으로 사업자를 변경하려는 것은 그동안 대북사업을 지휘했던 정주영-몽헌 부자와 김윤규 전 부회장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현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인식과 현대의 자금력이 과거처럼 북측에 큰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 분쟁 해결 절차는 = 이처럼 남북 사업자 간에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현대아산과 아태위가 맺은 ’7대 합의서’에도 해결방법이 명시돼 있다.

분쟁이 발생하면 쌍방이 협의하에 푸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30일 이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기관 인사를 포함해 남북 각 3명이 참여한 조정위원회를 구성, 해결하도록 했다.

이 조정위원회에서도 30일 이내에 해결이 안되면 중국 베이징의 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북측이나 현대아산 모두 아직 분쟁 해결 절차를 밟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5일 남북 간에 위원 명단이 교환돼 출범을 앞두고 있는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이 같은 분쟁 해결절차를 통해 상황이 정리된다 해도 양측에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어 개성관광이 이른 시일 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한편 이번 사안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남북관계의 냉기류와 맞물려 개성공단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 그와 같은 조짐은 전혀 없으며 북측도 그렇게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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