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관광, 고향집 방문하게 해주오”

▲ 개성관광을 마치고 소감을 전한 황성겸씨

나는 1928년 개성시 도운동에서 태어나 스물다섯 살까지 살았다. 6ㆍ25전쟁 중 1ㆍ4후퇴 때 4남매만 겨우 남쪽으로 피난 왔다. 벌써 50년 이상이 흘렀다. 내 나이도 벌써 일흔 여덟이다.

당시 부모님과 일가친척 분들은 모두 북녘 고향땅에 남으셨다.

죽기 전에 고향에 한번 가보려나 했는데 이번에 현대아산에서 개성관광을 시범으로 실시한다고 해서 신청했다. 1차 개성관광객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걸 알고 너무 기뻤다. 얼마나 감개무량하던지 말로 다 설명 못한다.

반세기만에 고향땅을 밟는 그 기분을 우리 후대들은 상상이나 하겠는가. 출발하는 그 전날은 잠도 한숨 못 잤다.

26일 새벽 5시 30분에 경복궁 주차장에 모였다. 6시 10분쯤 버스 14대에 관광객 500여명, 기자 30여명이 나눠 타고 출발했다. 기자들은 비디오촬영도 하지만 일반인은 카메라만 허용했다. 근데 카메라가 고장 나는 바람에 몇 장 찍지도 못해 아쉬웠다.

남측 마지막 경계인 도라산 CIQ(출입사무소)를 지나 비무장지대에 들어서니 긴장됐다. 버스로 세 시간쯤 달려 드디어 개성에 도착했다. 출입관리는 철저하게 했다.

예전 풍경 눈에 들어와 기억 더듬어

개성에는 아파트를 많이 지어 놨다. 고층아파트도 있지만 3~5층짜리 단층 아파트가 많았다. 그 오랜 세월에 개성도 많이 변했다. 길도 많이 변했다. 그래도 예전 길이 간간히 눈에 들어오면 옛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개성 중심은 변했어도 옛 고적은 예전 그대로다. 오전에 성균관, 선죽교, 고려박물관, 숭양서원을 관람했다. 선죽교는 그 시절 그대로인데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정몽주의 핏자국’도 흐려진 것 같다.

선죽교란 글씨만 한자고 모든 용어가 한글로 써 있어 이채로웠다. 고적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글일색.

숭양서원 관광을 마치고 평통식당(평화통일)에서 점심을 먹었다. 개성식 반상이 나왔는데 개성 고유음식 맛을 많이 살렸다. 밥, 국 포함해 13가지 정도 반찬이 나왔는데 예전 그 맛 그대로였다. 북한산 소주, 맥주인 령통소주와 봉학맥주도 함께 곁들었다.

버스로만 이동하다 관광지에서만 잠깐 내렸다가 다시 버스로 이동하니 북한 주민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거리에도 사람이 많이 보이질 않았다. 아마 낮에는 직장을 다녀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 만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면 저쪽에서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가슴이 참 뭉클했다.

고향집, 고향사람 못만나 너무 아쉬워

북한 주민과 얘기할 시간은 고적마다 있는 매점에서 물건을 살 때 뿐이다. 매점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 판매원들만 있었다. 물건은 달러로 계산하는데 1달러, 2달러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러, 두 달러’라고 부른다. 관광객들은 주로 담배를 많이 사는데 나도 담배 한 보루에 7달러 주고 샀다.

▲ 선죽교를 관람하고 있는 관광객

선죽교에 갔을 때 그 곳 판매원에게 내가 개성출신이고 도운동이 고향이라고 했더니, 도운동이면 이곳 선죽동에서 5~6분 거리 밖에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엔 좀 먼 거리였던 거 같은데 그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지척임에도 그냥 돌아서야만 했다. 그곳은 관광 코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후 관광은 박연폭포와 개성공단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마쳤다. 개성시내에서 30분이면 박연폭포까지 간다. 길은 참 잘 닦아 놨다. 그렇게 관광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오니 저녁 6시쯤 됐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우선 비용의 문제다. 가 보는 건 좋은데 19만 5천원이면 너무 비싸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집에 가보지 못한 것, 동네에 가보지도 못한 것, 가족을 만나보고 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번 개성관광은 개성시내를 버스에서 내려 구경도 못하고 개인적인 자유행동을 못하게 하는 제한이 있었다. 물론 처음 시작한 관광이라 그럴 것이다.

북한도 실향민 요구 수용해야

앞으로 좀 더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당일이 아닌 1박2일, 2박3일짜리 코스 개발도 필요하다. 또한 동네도 구경하고, 시내도 자유스럽게 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소망이다. 1박2일 코스가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때 잠은 민박이 제일 좋을 것 같다.

개성에 반드시 다시 가고 싶다. 더욱이 다른 사람에겐 관광일지 몰라도 나에겐 관광이 아닌 고향방문이었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개성관광이 남한 내 반응이 좋으면, 북한도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우리의 요구조건을 수용해 줄 것으로 믿는다.

개성에는 재미교포를 비롯해 외국 관광객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외국인들은 벌써부터 관광하러 다녔는데 우리만 이처럼 늦었다. 특이한 것은 내가 좀 더 일찍 보려고 서둘러서 그런지, 고적지에 매표소는 눈에 안 보였다. 다음에 가게 되면 천천히 차근차근 둘러 볼 것이다.

관광 갔던 사람 모두 고향 잘 갔다 왔다며 반응이 좋았다. 이런 기회를 준 현대 아산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황성겸/ 개성시민회 감사
구술정리 : 강창서 대학생 인턴기자 kcs@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