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제안을 사실상 거부해옴에 따라 개성공단의 운명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가동 9년 만에 사실상 폐쇄 수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북한은 26일 오후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 괴뢰패당이 계속 사태의 악화를 추구한다면 우리가 먼저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중대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우리 정부가 이날 오전까지 북측이 회담 제안에 응하지 않을 경우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대화’ 의지가 없음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북한이 우리 측의 회담 제안을 거부할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북한은 지난 1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를 통해 “개성공업지구를 위험천만한 전쟁발원지로 만들려 하면서 ‘운영 정상화를 위한 대화’요 뭐요 하는 것은 한갖 요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전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 조속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원칙이 없는 퍼주기나 적당한 타협을 통한 해결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론’을 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보상을 통해 위기를 땜질해왔던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우리 정부와 북한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때문에 개성공단으로의 식자재·의약품 반입이 차단되면서 우리 근로자들의 인도적 문제와 더불어 신변안전 문제를 대비해 단계적 철수는 불가피하다.
정부는 개성공단 잔류 인원에 대한 철수와 함께 북한의 차단조치로 경영의 애로를 겪고 있는 입주기업들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북측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전기 공급 중단, 공단 폐쇄까지 준비할 계획이다.
한 대북전문가는 데일리NK에 “북측이 통행제한하고 근로자들을 철수시켰을 때 이미 예견된 상황”이라며 “북한이 근로자 철수를 하면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나오지 않을 경우 신변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에게 철수를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기회에 과거와 같이 위협하면 대화하고 지원한다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개성공단의 운명을 알 수 없지만, 최악의 상황도 설정해 지금의 상황을 대처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은 그동안 몇 차례 입·출경이 제한된 적은 있지만, 이번과 같이 장기화된 적은 없다.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인한 ‘5.24조치’와 연평도 포격 사태에도 개성공단은 유지되면서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로 인식돼 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마중물’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때문에 현시점에서 개성공단 폐쇄를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은 것 같다.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겠느냐”면서 “폐쇄 조치를 하게 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폐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이어 “북한이 말한 중대한 조치는 특별한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에) 미련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이라며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북한에 대한 대응책이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