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인질사태…기능주의 통일론의 종말인가?

I.
한국은 개성공단이라는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인해 화병의 일종인 ‘화해병’에 걸려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간단히 말해 현재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김정일 정권을 때리지도, 또 김정일 정권에 빌지도 못하는 상태다.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설사 이번에 인질로 잡힌 현대아산의 유모씨가 ‘어찌어찌’ 풀려나더라도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질 소지는 농후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이 둘은 남북 간의 교류가 양적, 질적으로 높아지면 결국 서로 간의 오해도 사라지고, 바로 이 남북교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상호이익으로 말미암아 통일에 가까이 간다는 이른바 ‘기능주의 통일론’의 산물이다. 목하 벌어지는 개성의 인질극은 바로 이 기능주의 통일론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한국의 통일부는 지금까지 이 기능주의 통일론에 목을 맸다는 점에서, 개성공단 인질사태는 통일부의 정책 방향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0. 0

기능주의 통일론의 문제점을 오래 전부터 예리하게 지적한 분은 함흥 출신의 원로 재미 정치학자 오병헌(吳炳憲) 교수로서, 1996년 한국에 체류하며 쓴 책 『평화 통일은 가능한가』(문학과 지성사)는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파악한, 지금 읽어 보아도 놀랄 만큼 현실성을 갖고 있다.

“음악․종교․경제 활동 등 비정치적인 교류의 힘으로 휴전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이른바 기능주의적인 사고 방식이 널리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희망이라는 것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 간의 협상은 벽에 부딪히는 반면, 최근 들어 남북 간의 민간 교류가 갖가지 형태로 활발해지면서, 이 경향이 도를 넘치게 강해지는 경향을 보고, 저자는 기능주의의 효용을 지나치게 믿는 풍조를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10쪽)

“근본적인 문제는 주권 국가가 가지는 물리적 강제력, 즉 힘이 기능주의적인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힘은 이성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런 경우에는 냉철한 계산과 우호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능주의에 결정타를 가할 수 있다. 국가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기구에 군사력이 이양되지 않는 한 이 애로는 여전히 남는다(……)” (91쪽)

오교수의 위 인용문들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문제를 족집게처럼 잡아내고 있다. 다만 오교수의 기능주의 비판에서 교류의 주체는 민간인데, 개성공단은 남북정권이 주도하고 남한의 기업들과 북한의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런 점에서 한반도식 기능주의의 문제점을 더 드러내고 있다. 즉 북한 정권이 형식적으로 보장한 교류상의 안전도 바로 그 정권이 헌신짝처럼 팽개쳤고, 다른 한편 기능주의의 핵심은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교류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일부가 이 기능주의뿐 아니라 정치적 상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남북간 상생과 공영의 상징으로 개성공단을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차라리 남측에서는 북한의 싼 임금과 개성공단에서 북한 노동자 및 관리자와의 접촉에서 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변화와 전파, 북측에서는 막대한 외화벌이 및 남한 기업의 인질화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현실적일 뿐더러 이런 전제하에 그 어떤 개선 내지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 화해의 상징”, 혹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남북간 상생과 공영의 상징”이라는 표현을 끝없이 남발·반복함으로써 통일부 스스로가 문제의 본질을 흐려 놓았을 뿐더러 자승자박에 빠지고 있다.

일단 남북교류에서 기능주의와 상징조작이 결부되면 남측의 어떠한 정당한 비판, 북측의 어떠한 반문명적 행태에 대해서도 한국의 주무관서나 주관 회사는 “면역체계”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우선 남북교류가 ‘열심히만 하면 통일에 자동적으로 이바지 하는 것’으로 통일부 관료들의 의식에 자기정당화적 신념체계를 형성하고, 개성공단의 오락가락 집단인질사태 및 사실상 현대아산 유씨 납치사건이 일어나도 ‘상징성 운운’으로 넘어가는 행태를 끝없이 반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일은 결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통일부가 지난 정권에 그 어떤 원칙하에 움직였다면, ‘기능주의와 상징강조 이외의 모든 문명사회의 원칙은 버려도 좋다는 원칙’만을 지켰을 뿐이다.

하기야 이적단체로 판정받은 “6.15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와 “한총련” 등이 주관한 ‘수령체제 및 선군정치 찬양대회’인 “한국청년학생통일학술제전”의 끝에 열린 “10.4남북정상선언 암송대회”에 격려사를 한 사람이 다름 아니라 지난 정권에서 마지막 통일부 장관을 한 성공회 신부 이재정씨 아니었는가?(여기서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은 금강산관광 중단이 이명박 정부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이 기능주의 사고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자신들만이 실질적으로 남북통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남북교류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문제제기, 예를 들어 북한인권 비판을 극단적인 언사로 폄하하게 된다. 따라서 통일부가 수동적 면역체계에서 기회만 있으면 자기공격적 면역체계, 즉 북한인권단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넘어갔던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것이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이 만들어놓은 폐해로서 통일부가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II.
다른 한편 개성공단 인질 혹은 납치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분석할 필요도 있다.

햇볕정책의 창시자 및 지지자,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 백낙청 교수 등은 이 정책의 수혜자로서 이명박 정부를 들고 있다. 즉 현재 북한이 위협을 하더라도 한국 국민이 전혀 동요를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햇볕정책으로 가능해졌고, 이 점이 이명박 정부가 “기다리기 정책”을 펼 수 있는 배경이라는 주장이다. 매우 그럴싸한 이야기다.

실제로 김정일의 NLL 위협이나 심지어는 지난 4월초 미사일 발사에도 한국 국민이 동요하지 않고 일상성을 잃지 않은 것, 이 점이 북측의 기대를 무산시켰다는 점은 필자도 인정하고 또 강조한 바이다.

그러나 앞의 햇볕주의자들에 의하면 한국 국민이 북한의 위협에 ‘초연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남북이 지난 10년간 화해 분위기 속에서 잘 지내 왔는데, 북한이 위협을 한다 해도 말뿐이지, 설마 실행에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불바다 위협이 한국 국민의 ‘설마의 벽’을 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햇볕주의자들이 현재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는 논리다.

그러나 정치논리치곤 매우 묘한 측면이 있다. 햇볕주의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극렬히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일 북한이 불바다 위협을 실행에 옮기면 어떻게 될까? 논리적으로 한국 국민은 북한의 행태에 매우 실망하고 분노하여 햇볕정책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일종의 ‘저강도’ 위협을 실행에 옮기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개성공단 유씨 납치사건 같은 것?

노련한 통일전선부 직원이라면 통일부의 반응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을 생각한다면 통일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능주의와 상징조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의 반응은? “지난 10년처럼 북한 지원을 통한 화해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북한이 실제 도발할 이유는 없다”는 햇볕주의자들의 주장으로부터 현재 한국사회에는 두 가지 정 반대의 결론이 나오고 있다. 첫째, 화해분위기를 깨뜨린 자에게 도발의 책임이 있다. 둘째, 북한이 배은망덕하게 도발했으니 ‘퍼주기를 통한 평화 구매환상’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후자가 옳지만, 햇볕주의자들과 친북좌파들은 지속적으로 전자의 주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정일 정권의 개성공단 유씨 납치사건 같은 저강도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배경에는 햇볕주의자들의 ‘이명박 정부 책임론’이 있음이 명백하다. 나아가 미사일 발사로 인해 받은 유엔제제를 우회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한국정부의 굴복을-‘제제’의 극단적 반대개념이 ‘굴복’이니까-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자국민이 상시로 인질과 납치의 대상이 되는 곳에서 ‘화해의 장’ 혹은 ‘상생 공영의 장’을 찾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이런 점에서 유씨 납치가 장기화될 경우 취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대응책은 유씨를 귀환시킨 후 개성공단을 철수하는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은 이 문제를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은 개성공단이 처음부터 사실상 인질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편집증과 과대망상을 갖고 있는 김정일 정권이 존재하는 한, 개성공단 철수 이외에 인질극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만일 한국 정부가 ‘저돌적으로’ 개성공단을 계속 하겠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이론적으로 있기는 하다.

한국은 북한의 개성공단 인질화 시도에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높은 장애물을 설치해야 한다. 한국이 설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애물은 김정일 정권에게 돈을 안주는 것이다. 즉 유씨의 경우 불법납치 시 북한이 부담해야 할 부담금을 어마어마하게 책정하여, 김정일 정권이 북한노동자 임금에서 각종 명목으로 착취하는 부분에서 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씨 납치로 발생한 모든 비용도 북한정권이 지불하게 하고… 이것은 일방적으로라도 강제해야 한다.

사실 이런 방법은 산재(産災)의 위험성이 높은 사업장에 보험금 부담을 극단적으로 높임으로써 사업장 안전을 스스로 유도시켰던 20세기 유럽의 근로자 보호정책과 흡사하다. 그래야 황금알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르고 있는 김정일 정권이 뭔가 곰곰이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이며 또 다시 인질 내지는 납치극이 발생하면 내려야 할 결론은 명백하다.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을 현물(현금이 아님!)을 주고 데려올 때나, 동서독 국경에 월경자 사살을 목적으로 설치한 자동화 소총을 철거하라는 정치적 대가를 요구하며 금융지원을 할 때, 단 한번도 ‘화해의 상징’이니 ‘상생·공영의 상징’이니 하는 허사(虛辭)를 한 적이 없다. 서독정부의 입장은 처음부터 분단으로 인한 동서독 국민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 있었고, 이 점을 항상 명백히 하였다.

개성공단 납치사건은 한국의 거리에 붙어있는 수많은 플래카드처럼 인플레가 된 기능주의와 상징조작 통일론의 종말을 의미하고, 이러한 판단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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