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매우 위험한 줄타기”

▲ 29일 <자유기업원> 주최 아카데미에서 강의 중인 김태산 씨

북한 경제고위관료 출신 탈북자가 “남한 정부의 개성공단 사업은 위험한 줄타기”이며 “곧 낭패를 볼 것”이라고 언급,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 경공업성 등에서 20년간 경제관료로 일한 김태산(53) 씨는 29일 <자유기업원> 주최로 열린 ‘제8기 열린사회아카데미’에서 북한 정치, 경제 현실에 대해 강연했다. 김씨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북한경제 전문가로, 말레이시아와 체코에서 합영기업 (양국의 합작기업)을 운영한 바 있다.

김씨는 현 단계 북한의 경제와 남북경협에 대한 현실적 문제들을 지적하며, 개혁개방 등 향후 북한경제 회생 방안에 대해서 설명했다.

다음은 김태산 씨의 강연내용 중 일부를 문답형식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탈북한 동기가 무엇인가

▲ 김태산 씨

나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경제일꾼으로 20년을 일했다. 북에서는 그래도 고위층 생활을 했지만, 해외에 나가 일하다 보니 자본주의 사회가 좋다는 걸 깨달았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꿀 단지 속에 있는 꿀은 달콤함을 모르듯이,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자유로운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자유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배불리 먹는다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남한에서는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다.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정부주도 남북경협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의 전망은 어떠한가?

위험한 줄타기라고 본다. 남한의 기업들도 정부가 밀어주니까 손해를 무릅쓰고 추진하고 있지만, 곧 낭패를 당하고 말 것이다.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싼 원료공급, 싼 노동력, 생산물 현지판매 등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개성공단도 엄연한 해외로서,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이윤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문제인 싼 원료의 확보에서부터 문제에 부딪힌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북한에서 원료를 구입하지 않고 남한에서 차량으로 실어서 공수해야 한다. 원료뿐 아니라 전력도 남한에서 끌어다 쓰는 형편이다.

또한, 제품을 생산해도 북한에 팔지 못하기 때문에 100% 남한으로 다시 가지고 와야 하는 이중 부담이 존재한다. 싼 임금의 면에서도, 지금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50달러의 임금을 받는데, 이를 국가가 다 빼앗아갔다가, 지방노동자 임금과 같은 수준의 북한 돈으로 임금을 지급한다. 이런 식이라면 10년이 가도 북한의 생활수준은 높아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남한 기업의 요구가 아닌, 북한 측에서 파견된 당 비서들의 말만 듣기 때문에, 생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건설 때도, 북한 정권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해, 북한 노동자들 대신 파키스탄 등 동남아 근로자들로 대체했었다. 개성공단에서도 북한이 언제 일방적으로 인건비를 높이라고 요구할지 모른다.

개성공단 건은 이미 2000년 정주영 회장 방북 때 얘기된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이 북한 땅에 남한 기업은 들어올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불허했다가, 신의주특구가 망신당한 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것이다.

또 북한은 개성공단을 통해 교류하다가, 미국이 정해놓은 전략물자 반입금지에 따라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경우, 한민족의 화해를 막는 미국의 제국주의 책동이라는 선전용으로도 사용할 것이다.

남북경협은 정부가 나서서 하면 안 된다. 개인기업들이 개미떼처럼 밀고 나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

-‘햇볕정책’ 에 대한 의견은?

남한 정부의 대북 지원은 인민의 밥상에는 0.01달러도 올라가진 않았지만, 인민군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기는 했다.

1억 달러만 지원해도 북한이 1년 내내 배 곯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데, 5억 달러나 지원했으니, 이게 다 군수사업만 발전시켰다.

대북 현금지원, 北 군수사업 재가동에만 쓰였다

2000년 무렵 남한 정부의 현금지원이 시작되면서 멈췄던 군수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쌀 지원도 아니고, 김정일 정권유지에만 쓰인 현금지원을 집행한 남한의 책임자들은 탈북자들뿐만 아니라 북한 인민들에 의해 훗날 심판받을 것이다.

대북 식량지원도 40~50만 톤이면 북한 군대가 1년 정도 버틸 양이기 때문에, 군대를 우선 살려놓는 결과를 낳게 된다. 북에서는 이것도 남조선 괴뢰도당이 햇볕정책을 써서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속셈이라고 선전했다.

96년~97년을 거치며 공장굴뚝에는 까치집이 생기고, 폭풍전야 마냥 모든 국가의 기능이 마비됐었다. 중앙기관 사람들도 출근하면서 ‘이 나라가 다 됐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98년 이후 쌀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원된 쌀은 부두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군인들이 먼저 가져간 후, 장마당으로 흘려보내면서 그나마 도움이 된 것이다. 나는 북한에 지원된 쌀 1g도 먹어보지 못했다.

이때에도 북한은 김정일 장군의 위대한 정신 앞에 무릎 꿇은 남조선 괴뢰당과 미제 침략꾼이 경제봉쇄를 풀고,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선전했다.

-북한의 식량난은 어느 정도였나?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탈북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가 보다.

나는 경공업성에 일하면서 전체 인구 숫자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에 와보니 300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하던데, 내가 알기로는 그보다도 많은 것 같다.

93~94년 무렵 함경도, 양강도 지방부터 서서히 배급이 끊기더니, 급기야 96년에는 평양까지 배급이 끊겼다. 이때부터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여, 역전에는 아침마다 꽃제비들의 시체가 즐비해 치우는 게 일이었다.

이러한 참혹한 현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북한에선 정보가 극도로 통제되기 때문이다. 외국의 어떤 기자도 자기 맘대로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북한 실정에 대한 정보유출이 불가능하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으니까, 관도 못 짜고, 시체 쌀 천도 없었다. 구덩이에 시체들을 몰아놓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북쪽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아직도 눈감으면 그때 죽어가던 사람이 생각난다.

이동의 자유만 있었더라도, 대량아사는 피했을 것

-그렇다면 식량난의 발생 원인은 무엇인가

북한 사람들도 여기 사람들처럼 머리도 좋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시기에 각자 살아남도록 풀어줬으면 그렇게 많은 아사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도 가고, 장사도 하고, 도시하고 농촌하고 교류함으로써 유통이 되게 했으면 1/10도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다.

1965년부터 발급된 통행증은 북한 주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했다. 고난의 행군 때도 통행증을 끊어주지 않아 앉은자리에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자유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보다 뒤떨어져 있던 남한이 어떻게 이렇게 발전하였는가? 92년 체코에서 처음 남한 기업을 봤는데,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북한경제는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는데, 북한보다 자원도 없는 남한이 어떻게 저렇게 발전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한경제 성장은 직업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자유는 개인의 창발성과 재량을 극대화시킨다.

같은 두뇌, 핏줄을 가진 북쪽에선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 고등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배치받는데, 이것도 토대에 따라 나뉘어진다. 북한 사람들이 강제적 직장배치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직장에 안 나가면 배급을 못 받을 뿐더러, 6개월간 무직상태가 계속되면 1년 6개월 ~2년 교화형을 받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기 싫은 거 하다보니까, 당연히 생산력과 능률이 떨어지게 된다. 출근만 하면 배급을 주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업소 하나하나가 망하다 보니 국가가 망하게 된 것이다. 남한에선 직업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그것이 모여 국가도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개혁, 개방만이 북한의 살길이다

-북한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겠는가?

먼저 북한엔 원료를 구입할 돈(dollar)이 없다. 신발 생산만 따져 봐도 원료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이것을 구입할 돈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공장도 돌아가지 않는다.

또 북한은 필요한 전기량의 40%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이 전기마저도 지하군수공장이나 김일성, 김정일 관련 시설에 사용되고, 나머지 조금이 평양에 공급된다.

남한 사람들은 통일된 후 통일비용을 걱정하던데,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 자유분업, 민주화만 된다면 북한 사람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 수 있다.

그렇게 경제가 일어서려면 개혁, 개방이 필수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 문이 열리기 전에는 그 땅은 절대 일어설 수 없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어떠한가

남한의 어느 목사가 북한 인민에게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던데, 자유(인권)가 있은 다음에 생존권이 있는 것이지, 무조건 배만 불리면 개인의 의지 없이 살아도 된다는 말인가.

내 장인은 남한식으로 말하면 경찰청 처장으로 있으면서 정치범 수용소 건설을 담당했었다. 때문에 그곳에 누가 들어가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정치범들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맞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다.

수용소 경비병들은 수감자들을 죽여도 괜찮으며, 전쟁 일주일 전에는 수류탄으로 수감자 전원을 죽인다는 것까지 명시되어 있다.

남한 감옥에 가보니, 이건 감옥이 아니다. 환경이 너무 좋다. 이번 공개총살 동영상은 북한인권문제의 0.1%가 용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북한인권문제가 크게 여론화 될 것이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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