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넘지 않고선 ‘신뢰프로세스’ 가동 못한다

‘잠정 폐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개성공단 상황은 ‘신뢰’를 핵심가치로 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직접 타격하는 사안으로, 향후 5년간 남북관계의 향배를 좌우할 결정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원칙을 밝히면서 ‘개성공단’을 강조해 거론할 만큼,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여타의 대북정책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향후 험난한 남북관계가 예상되는 이유다.


개성공단 사태는 정부가 공식 출범(2·25)한지 불과 1개월여 만에 발생한 대형사고로 미칠 여파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출범 5개월여 만인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인 박왕자 씨 피격사건이 있었다. 사건 이후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보장 등 관광재개 선결 조건을 두고 팽팽한 공방이 이뤄졌고, 결국 남측 재산이 동결·몰수되는 파국을 맞았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 집권기간 내내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았다.


개성공단 사태도 현재로서 이렇다할 타개책이 보이지 않아 금강산 관광사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우리 측 인원 귀환 조치가 ‘자국민 안전 보호’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던 만큼, 이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 조건에선 사태 진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여기에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를 “북한의 명백한 도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서로 합의를 해서 기업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약속을 준수하겠다고 해서 거기에 들어가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인데 하루아침에 그 합의를 물거품같이 무시해 버렸다”면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지난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 “나중에 빈껍데기가 되더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고 하는 확약이 필요하다”고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의 강경 발언에 비춰볼 때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에 있어선 개성공단 사태의 해법과정이 ‘바로미터’가 될 공산이 크다. 개성공단 문제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이대로 방치해 두고 다른 사안을 논의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남북 간 대화 통로 역할도 해왔던 개성공단의 잠정 폐쇄는 남북 간 대화 흐름을 형성하는데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은 개성공단 조치에 앞서 적십자, 군 통신선 등 모든 통신을 차단했고, 우리 정부의 재개요구에도 묵묵부답하는 상황이다.


자연재해와 소외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지속할 것으로 보여 이를 계기로 남북 간 소통이 재개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북한이 2011, 2012년과 같이 대규모 또는 특정 물자를 고집할 경우 의미 있는 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천명한 것 역시 우리 정부의 대규모 인도 지원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개성공단 사태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북한의 ‘남한 정부 흔들기’ 전략일 수 있지만, 이에 대한 ‘학습효과’로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종국에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돼도 우리 정부가 입을 정치적 부담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도 원칙 있는 대북 강경책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과거와 달리 한미관계의 위상이 공고해져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식 대외전략이 효과를 내기 어렵고, 우방인 중국도 계속된 도발과 위협 행동에 북한과 거리두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 국면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 더욱 고립에 내몰리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줄곧 강경한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도 우리 정부가 먼저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데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6·15공동선언의 옥동자인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은 남한에 제공하는 ‘시혜’라는 입장이고, 이번 사태에 ‘최고 존엄 훼손’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도 스스로 퇴로를 막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5년을 보내고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차기 정부를 기다리겠다는 전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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