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기업들 “새 출발하고 싶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

`개성공단 기업 살리기 대책회의’를 위해 모인 30여명의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은 남북 경색 국면 속에서 개성공단의 존립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는 데 대해 남북 당국을 성토하는가 하면 통행과 인력 수급, 신변 안전 등 대책 마련의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비공개였던 협회 대책회의는 이날 `한계 상황에서 더 숨길 필요도 없다’는 일부 업주들의 격앙된 목소리 때문에 방송 카메라 등 언론에 공개한 채 진행됐다.

가죽 장갑 제조업체로 개성공단에 2차로 입주한 ㈜범양글러브의 윤병덕 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윤 대표는 “개성공단에 투자한 거 보상만 받는다면 은행빚부터 갚고 베트남이건 어디건 생산 기지 옮겨서 새 출발 하고 싶다”면서 “2007년 입주 당시에는 꿈에 부풀었지만 지금은 절망적이다. 23년간 가죽 장갑을 만들면서 이번처럼 속수무책이고 무기력한 적은 없었다. 꼭 남북 당국에 인질이 된 듯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입주 후 신청한 인력은 500명인데 지금 고작 109명이 일하고 있다”면서 “나이들도 많고 작업 집중력도 낮아 관리도 어렵다”며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협회 부회장이자 플라스틱제품 제조업을 하는 ㈜에스제이테크의 유창근 대표는 “2004년 시범단지에 입주해 교육만 3년을 시킨 뒤 빛을 보려다가 철퇴를 맞았다”면서 “다국적 기업과 거래를 많이 했는데 작년 말 이후 주문이 중단됐고, 매출이 주니까 은행이 이유를 따지더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협회 집행부로서, 아픔이 더 큰 업주들도 많아서 하소연도 못한다”면서 “내달 2일 남북 실무 회담에서는 퇴로를 열어주든 어쨌든 간에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남북 정부가 개성공단을 경제특구로서 운영하겠다던 애초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등산복을 제조하는 일성레포츠의 이은행 대표는 “작년 연말 서울에 있는 공장 문을 닫고 올인했기 때문에 갈 데가 없다”면서 “내달 중순 이후부터는 주문 물량이 없다”고 절박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 대표는 “북측이 통행을 풀고, 합숙소를 먼저 짓자는 얘기만 나와도 괜찮을 것”이라며 내달 2일 남북 실무 회담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었다.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1주일간 입원했다는 속옷 제조업체 ㈜나인JIT의 이희건 대표는 “지난주부터 조업이 40% 가량 중단됐다”면서 “이는 바이어 주문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이어들이 통행 제한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면서 “통행이나 인력 수급 등 좋은 조치들이 있으면 바이어들이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작업복을 생산하는 ㈜녹색섬유의 박용만 대표는 “22년간 사업을 하면서 물동량이 없어 휴가를 보내고 휴업을 고려하는 건 처음”이라면서 “북한은 인원을 제한하고, 출퇴근을 체크하는 등 비협조적인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며 북한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아직 입주 승인조차 받지 못한 2차 입주기업들은 아주 비관적이었다.

여성 정장을 만드는 ㈜오오엔육육닷컴의 강창범 대표는 “인력도, 기술도 안 갖춰지는 등 공장이 정상화되지 못한 우리 2차 입주기업들은 희망이 없다. 손실 보험 등 퇴로만 열어주면 언제든지 철수하려는 의향들이 많다”고 실토했다.

여성 의류업체로 국내에서 꽤 알려진 ㈜신원의 박흥식 대표는 “개성공단은 분명히 우리에게 비전이 있다”면서 “남북이 애초 개성공단을 만들 때 취지로 돌아가야 기업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남북이 개성공단을 정치적인 문제와는 무관하게 처음부터 철저하게 특구로 분리시켰다면 이러한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도 기숙사를 약속대로 2007년에 착공했다면 입주기업들의 인력난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시범단지에 들어와 5년을 투자해 지금의 생산성을 이룩했는데 다른데 가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통일될 때까지 갈등이 존재할 수도 있는 개성공단을 남과 북이 철저하게 정치.군사적인 것과 무관하게 분리시켜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