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후퇴 때 남으로 향하는 나룻배를 향해 어머니는 개떡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던지셨지만 받지 못하고 그만 물에 빠뜨렸지.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어”
황해도 연백군 호남면이 고향인 고모(79.여.강화군 교동면)씨는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 어머니를 북에 남겨둔 채 홀로 남으로 내려왔다.
피란 당시 고씨는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였지만 반세기도 더 지난 현재, 고씨의 머리는 백발로 변했고 세월의 흔적은 고씨의 이마에 주름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뒤따라 남으로 오겠다던 고씨 어머니의 약속은 고씨의 눈물과 한숨 속에 5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고씨처럼 고향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의 애틋한 사연이 책으로 묶인다.
6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화군협의회(회장 김영애)에 따르면 민주평통 강화군협의회는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넘어와 강화 지역에 정착한 실향민 1세대 50여명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실향민의 삶을 주제로 한 책을 발간키로 하고 지난달 20일 `실향민 증언록 제작설명회’를 가졌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황해도 연백군 연백평야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배를 이용,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불과 5km 떨어진 강화 교동도로 많이 넘어왔다.
김영애 회장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교동도, 연백군 주민들은 5일장이 서면 나룻배를 이용, 서로 왕래하는 등 당시 교동도와 연백군은 1일 생활권으로 묶여 있었다”며 “전쟁이 발발하고 특히 1.4후퇴 때 북에서 넘어 온 수천명의 피란민이 강화에 정착했지만 지금은 다들 돌아가시고 300여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평통 강화군협의회는 세월이 더 흘러 실향민 1세대가 모두 숨지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책, 영상 등으로 남기기로 하고 현재 실향민의 사연을 녹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책은 실향민들의 고향 모습, 피란 당시 상황, 남에 정착한 뒤의 생활 등을 내용으로 구성되며 민주평통 강화군협의회는 이야기 재구성, 출판작업 등을 거쳐 내년 초 5천부 가량을 발간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실향민들은 명절 때만 되면 높은 산에 올라가 고향땅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눈물만 쏟고 내려오곤 한다”며 “지난 정상회담의 성과로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싹트는 이 때, 앞으로 발간될 실향민 증언록이 통일을 앞당기는데 보탬이 돼 실향민의 아픔이 치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북에 계신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만 같아 문도 잠그지 않은 채 마루에서 잠을 청한다는 황모(69.강화군 교동면)씨.
북의 어머니를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앞으로 발간될 책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되길 바란다고 김 회장은 덧붙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