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대국’ 책임 회피 南北관계 의도적 파탄

북한이 김정일 방중 이후 남북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의 정책 결정이 김정일 1인에 의해 최종 결정된다는 점에서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최악의 국면으로 전환한 데는 내부 상황이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정일 방중 결과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은 김정일 방중 사흘만인 지난달 30일 ‘남한 정부와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며 동해 군(軍)통신선 차단과 금강산 지구 통신연락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1일에는 남북간 비밀접촉 내용을 일방적으로 폭로했다. 우리가 북측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유감 표명 수준으로 마무리 짓자고 제안했으며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돈봉투까지 건냈다는 폭로는 남한 정부를 곤경에 빠트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우선 북한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방중 결과에 따른 정책 전환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반도 정세를 긴장 국면으로 몰아넣는 것은 6자회담에 우선해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중국의 주문을 외면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올해 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피력하며 평화공세를 펼쳐왔다는 점에서도 압박 기조로의 전환은 갑작스럽다는 평가다.


▶김정일, 中지원 등에 업고 南에 큰소리?=9개월만에 전격적으로 추진된 김정일의 이번 방중은 당초 기대에 비해 성과가 높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중국의 동해출항권 통로인 훈춘-나진 도로공사와 신의주특구 개발의 일환인 황금평 개발 착공식이 북중정상회담 이후 연기된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방중 결과에 대한 북한식 불만표시였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지원 약속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북한이 남측의 뻣뻣한 태도를 고쳐놓기 위한 ‘기 싸움’에 돌입했다는 주장도 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의 잇단 방중은 중국이 강조하는 빈번한 고위층 교류 요구에 호응한 것으로 이미 경제지원 규모 등에 대한 사전협의를 마친 상태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며 중국의 ‘선물보따리’가 북한 요구에 충족할만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같은 주장은 북한이 대남 공세를 본격화 한 시점이 김정일의 방중 직후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즉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지원을 포기할 정도로 중국측으로부터 경제·정치적인 지원 약속을 받아내지 않았겠냐는 관측이다.


또한 현재 북한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인 후계안착과 내부안정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중국의 지원(후계안착)과 남한과의 갈등국면(체제결속)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총선·대선 앞두고 李정부 흔들기=북한의 강공 전략 배경에는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진보·좌파 진영을 측면 지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명박 정부를 최대한 흠집내기 위해 한반도 군사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흔들어 놓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임기가 채 2년도 남지 않은 현 정부와의 관계는 아예 포기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내년 대선에서 과거 ‘햇볕정책’을 이은 정권이 창출된다면 대규모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아래 야권 연대세력에 대한 힘실어주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제협력 확대, 대북 지원 재개 등을 앞세운 대북정책의 전환은 북한 체제 안정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들어 국내 정치 현안 등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고, 야권에서는 통합 논의가 활발해지며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 교체 분위기를 고조되키고 있다. 보수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현 정권이 대북정책 면에서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지지층의 이탈까지도 현실화 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북지원, 교류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보수정권 집권 연장을 막기 위해 1년 반 동안의 괴로움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


▶어차피 물건너간 ‘강성대국’ 건설 구호=북한의 대외정책 변화에는 국내 상황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내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으로 북한이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공언한 해이다.  


북한은 식량난 시기를 거치면서 이 기간을 견디면 사상, 경제, 총대로 강성대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주민들을 달래왔다. 그러나 사상, 총대 면에서의 성과는 둘째로 치더라도 경제 분야에서는 오히려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장기간의 경제난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그래도 내년에는 장군님이 뭔가 해주는게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결국 북한 당국으로써는 내년까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보여줄만한 경제 업적을 쌓아야 하는 과제 달성이 시급하다.


이에 따라 북한은 올해 초 우리 정부를 비롯해 국제사회에 전방위적으로 식량지원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현재 미 행정부가 대북식량지원 재개를 준비하고 있지만 대규모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경제 실정의 책임을 외부에 전가함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려 할 것이다.


한 대북전문가는 “강성대국을 공언한 2012년 주민 배급을 대폭 확대하는 등 경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남한과의 대결 국면을 의도적으로 조성해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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