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주 부총리 임명…김정은 의중 반영 주목

북한 핵(核) 외교의 산주역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2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내각 부총리에 임명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또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서방 사회로부터 ‘노력한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외무성 제1부상에 임명됐다. 6자회담 북한 측 차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참사도 외무성 부상에 각각 임명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인사와 관련한 별다른 언급 없이 승진 사실만 전했다.
 
강 신임 부총리는 외교 업무에서 잔뼈가 굶은 인물로 당 국제부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후 내각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북한 핵협상의 주역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김정일이 각별히 신임하는 인물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병호 비서와 함께 정책 디시전 메이커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그의 내각 부총리 임명은 북한의 핵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최근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뤄진 인사여서 후계구도 포석 일환이라는 추측도 낳고 있다. 이번 인사에 김정은의 입김이 작용했다면 외교부 인사를 중용하는 실용인사의 특징이 발휘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강석주와 김계관 두 사람 모두 김정일의 핵 보유 정책을 외교적으로 뒷받침해온 구세대 인물이라는 점에서 개혁적인 인사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강 부총리는 1980년 41세의 나이로 당 국제부 과장에서 외교 업무를 시작해 1986년 정무원(現 내각) 시절 외교부 제1부상으로 고속 승진했다. 그는 1994년 1차 핵위기 이후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8년 만인 2002년 9월 HEUP(고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를 인정하는 발언을 해 2차 핵위기를 불러왔다. 


강 부총리는 제네바 합의 당시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이후 북한의 핵 외교 행보가 말 바꾸기와 합의 불이행 등을 계속하면서 사실상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6년 11월 이 치료 차 러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어떻게 핵포기가 가능하겠는가. 핵을 포기하려고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인가”라는 북한의 핵 전략이 그대로 담긴 발언을 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 부총리는 올해 두 차례 중국 방문이나 현지지도 등에 김정일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대외적인 협상 보다는 정책 조정 역할을 하면서 북한을 방문하는 해외 고위 사절단을 영접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김계관 신임 외무성 제1부상은 제네바합의 때 북측 차석대표로 강석주 당시 수석대표와 협상에 임했다. 이후 미북 미사일 회담과 테러관련 회담, 6자회담 등에서 북측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김 제1부상은 북한에서 오랫동안 대미 협상을 해온 노련한 외교관이면서 김정일의 신임 또한 두텁다. 북한의 대미 외교 자원이 제한돼 있어 강 부총리와 함께 현직에서 롱런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는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나서면서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담판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의 ‘2.13합의’ 및 ‘10.3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는 특히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도중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회담장으로 불러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6자회담 10.3합의의 경과와 내용을 직접 설명토록 할 정도로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았다.


리용호 신임 외무성 부상도 북한 내의 대미 전문가로 1990년대초부터 핵문제 뿐 아니라 군축, 인권, 생화학무기, 미사일 등 주요 대미 외교 현안을 다루는 각종 협상에 핵심 멤버로 참여했으며 영국 주재 북한 대사를 거쳐 2007년 북한 외무성에 복귀한 뒤 차석대표로 6자회담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