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주 다시 만나면 빨리 협상하자고 하겠다”

“강석주 (북 외무성) 제1부상을 다시 만난다면 ‘빨리 만나 협상하자’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북미간 ‘진지한 대화(genuine talks)가 모든 문제 해결의 첩경입니다”.

지난 1994년 북 외무성의 강석주 제1부상과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를 탄생시킨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29일 연설에 이어 30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가진 연합뉴스 회견에서도 미.북 양국이 진지한 태도로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북핵문제의 지름길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94년 핵위기 상황은 그 해 6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상황까지 가는 등 지금보다 훨씬 위급했지만 클린턴 대통령 등 관리들의 성향이 아주 냉소적인 현 부시정부 관리들에 비해 전향적”이었다면서 “한.미 양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면서 동맹관계를 강화(cultivate)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갈루치 전 차관보와의 일문일답.

— 미국의 군사공격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온 ‘레드 라인’은 무엇으로 보나.

▲’한계선'(red line)에 대해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북한이 핵물질을 외부로 유출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해도 별로 걱정하지 않지만 핵물질 등 대량살상무기의 외부 유출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

— ‘북.미간 진지한 협상’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6자회담의 유용성은.

▲6자회담은 북핵문제 해결에 유용한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6자회담 자체가 북.미간 직접 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회담 참가국들도 6자회담내 개별협상을 통해 양자간 진지하게 만나 얘기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필요하다.

— 한미 동맹관계의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지난 10년간 한미동맹의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 94년의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현재 부시 행정부는 훨씬 북한의 행동에 냉소적이다. 반면 한국은 당시에 비해 북한에 대해 더 큰 인내심을 보이게 되면서 대북 정책을 둘러싼 갈등관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양국 정부간 서로 이해를 깊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인들은 북한 핵물질의 외부 유출을 끔찍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미국인들은 한반도 전쟁 발발시 한국인들의 ‘악몽’을 배려해야 한다.

— 12년 전 협상시 제2차 핵위기를 예상했나.

▲이런 상황까지 올 줄 생각했더라면 좀 더 투명하고 구체적인 용어들을 협상문에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런 세밀한 협상안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북측이 안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여하튼 지금 핵협상을 다시 한다 해도 군사공격 반대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무력수단 방식은 찬성하지 않는다.

— 제네바합의에 ‘기밀 회의록'(confidential minutes)’이 있음을 밝혔는데.

▲제네바합의 당시 강석주 제1부상 등 북측의 요청으로 미국의 대북 요구사항들이 담겨긴 ‘기밀 회의록'(confidential minutes)’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회의록은 미 의회에는 보고가 됐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

— 지난 해 발간된 책에서 미 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말기부터 북한의 HEU(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내역을 알고 있음을 털어놨는데, 이 내용도 회의록에 있나.

▲HEU 문제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북한이 경수로외 다른 핵프로그램을 갖지 않으며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준수한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암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중유공급 중단 등 미국이 ’94 핵합의’를 먼저 위반했다는 주장도 있다.

▲(웃으면서) 넌센스다. 90년대에 미국은 정치관계 개선 등 북한이 원하는 것 모두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핵합의를 위반한 적은 없다. 우리는 중유공급과 함께 경수로 건설작업도 진행해왔다. 북한이 핵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material breach)을 안했다면 정치적 관계도 개선됐을 것이다.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북미관계 개선 의지가 있었으나 제네바 합의에 반대했던 의회의 큰 반대에 직면, 뜻을 이루지 못했다.

— 북한이 3-∼년내 붕괴할 것으로 보고 큰 양보를 했다는 지적도 있다.

▲붕괴를 예단하고 핵합의를 한 것은 아니다. 북한 정권의 흥망과 무관하게 당시 이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 94년 6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과정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 역할은.

▲김 대통령은 당시 북핵문제를 대외적 관점 뿐 아닌 내치적 관점에서 풀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양자간 우스꽝스런 긴장(funny odd tension)을 초래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늘 “북한에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말라. 북한을 다루는 일은 우리에게 배워라”는 식으로 미국에 압력을 가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태 악화는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식이었다.

— 부하였던 조엘 위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김 전 대통령 자신이 전쟁을 막았다고 회고록에서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전쟁을 막으려고 개입하는 등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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