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주-켈리 핵담판’ 배석 스트로브의 회고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암시하는 ‘폭탄 선언’과 함께 ‘최고 지도자급 회담'(정상회담)을 희망하는 발언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2002년 10월 3∼5일, 제임스 켈리 차관보와 잭 프리처드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대사 등 8명으로 구성된 미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북한 데이비드 스트로브(55) 한국과장(당시)은 17일 “강 부상이 핵개발 의혹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도 충격적이었지만 정상회담을 거론하는 것을 보고 북한 당국의 현실 인식에도 놀랐다”며 숨막히게 돌아갔던 ‘평양 체류 3일’의 상황을 담담히 회고했다.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APARC) 부소장으로 재직 중인 스트로브 부소장은 이날 오후 서예가 열암 송정희 선생이 운영하는 세종로의 열암서원 방문 중 연합뉴스 취재진과 만나 “당시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악의 축’ 발언 등으로 양국관계가 크게 경색돼 정상회담은 꿈도 꾸지 못할 때인데도 정상회담 발언을 하는 걸 보고 ‘저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를까’라는 생각에 모두 갸우뚱했다”고 덧붙였다.


스트로브 부소장은 이 담판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리의 정보를 역이용해 핵프로그램을 감추는 데 활용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스트로브 부소장은 “북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 문제로 인해 북미 접촉 내용 중 잘못 알려진 게 적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군 군용기편으로 북한을 왕래한 미 대표단이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귀환했다는 것이나 켈리 차관보가 HEU 추진 증거를 북측에 제시했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는 것이다.


당시 회담 내용을 메모해 이를 토대로 전문(보고서)을 작성, 본국에 보냈던 스트로브 소장과 16∼17일 이틀 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강석주-켈리 평양담판’이 전후 상황을 주제별로 재구성해 본다.


◇김계관-켈리 회담(10월 3∼4일)


방북 첫날인 3일 오후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난 뒤 켈리 차관보가 “우리는 조선(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제 제기를 하자 김 부상은 “그런 것 없다. 이는 조ㆍ미(북ㆍ미)관계의 진전을 바라지 않는 자들의 책동이다”고 전면 부인했다.


김 부상은 이튿날 오전에도 우리 대표단과 짧게 만났으나 HEU 문제에 대한 대답을 시종 회피했다.


◇강석주-켈리 회담(10월 4일 오후 5시)


5일 오후 5시 강석주 제1부상은 우리 대표단을 접견한 뒤 “어젯밤과 오늘 새벽까지 고위 책임자 회의를 열어 논의한 내용을 설명하겠다”며 30분 가량 혼자 얘기했다. 그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우리가 알아차리도록 시사했는데 켈리 차관보가 이를 재확인하자 “이런 것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이 보다 더욱 강한 것도 있다”고 오히려 이를 인정했다. 그가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담판으로 해결 가능하다”, “최고 지도자급 회담으로도 해결될 수 있겠지” 등으로 부연한 것도 HEU의 존재를 시사한 것이다.


‘더욱 강한 것’에 대해 나중에 북측은 ‘국민의 대단합'(일심단결)이라고 주장했는데 당시 외교관끼리의 담판 현장에서 강 부상이 상대국 외교관 앞에서 이런 식으로 얘기한 것은 어떠한 문맥을 보더라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암시한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강 부상이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당시 크게 경색된 미ㆍ북관계에서 정상회담은 상상하기도 힘들었음을 감안할 때 북한의 국제관계에 대한 현실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놀랍기도 했다. 나는 강 부상 발언 후 다른 방으로 가서 담판 메모를 토대로 전문을 작성했다.


◇급거 귀국 시도 무산..英대사관 통해 보고(4일 오후)


대표단은 회의 끝에 대통령 등에게 이를 황급히 보고해야 한다고 판단, 급거 귀국을 시도했으나 항공기 운항 일정 변경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이에 주한 대사 출신으로 친분이 있던 짐 호어(Jim Hoar) 평양 주재 영 대사에게 연락, 통신시설을 빌려 대통령께 긴급 보고한 뒤 이튿날 서울로 왔다.


후일담이지만 호어 대사는 나중에 “당시 귀대표단의 보고서를 옆에서 슬쩍 훔쳐보면서 미 대표단이 워싱턴의 강경 분위기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이런 보고를 하는 것으로 한때 오해했다”고 털어놨다.


워싱턴의 강경파들은 북한의 HEU 프로그램 추진을 암시하는 보고서를 접한 뒤 꺼림칙하게 여겨왔던 ‘제네바 핵합의’를 깰 수 있는 호재로 생각해 반긴 것은 맞지만 ‘네오콘 음모’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한국측, 담판 내용 설명에 반신반의


대표단은 5일 오전 군용기편으로 서울로 귀환, 외교장관 관저에서 최성홍 외교부장관,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 임성준 외교안보 수석 등을 만나 회담 결과를 설명(debriefing)했다. 한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이 내용에 깜짝 놀라면서도 햇볕정책에 대한 타격을 우려해서인지 우리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일부 인사들은 믿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당일 도쿄로 날아가 주일 미 대사관저에서 일본의 총리실, 외무성 등 고위 당국자들에게 설명했는데 일본측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핵담판을 기록한 메모를 한국측에 전달해주지 않은 게 북측과의 ‘HEU 프로그램’ 공방과 이에 따른 한국 정부 일각의 의혹을 가중시켜준 게 아닌가라는 후회도 든다.


◇북ㆍ미 HEU 공방


평양을 떠나기 전 김계관 부상에게 “즉각 답하지 않아도 되니 우리가 제기한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 답을 달라”고 얘기했는데도 북측은 한동안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담판 내용을 통보 받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관계자를 파견, “미국에 이 내용(HEU)을 정말 시인했느냐”는 질책을 가한 뒤에야 그들은 돌연 “그런 것 없다”고 부인하면서 미국을 비난했다.


2002년 6월 이후 북한의 HEU 프로그램 착수를 확신했던 미국은 켈리 차관보 방북시 북ㆍ미 대화에서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구두로만 제기했을 뿐 HEU 프로그램의 핵심장비인 원심분리기 부품으로 사용 가능한 고강도 알루미늄관 등 장비 수입 자료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 6자회담에서 북측이 “증거를 내놓으라”고 끝까지 부인하자 2차회담(2004.2)이나 6자 실무그룹 회의(2004.5), 또는 3차회담(2004.6)에서 관련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공방전은 북한이 지난 9월 4일 “우라늄 농축 성공”을 발표, 일단락된 셈이다.


◇’통역상의 문제’ 보도 사실과 달라


그동안 HEU 공방전이 치열해지면서 ‘통역상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보도들이 이어졌는데,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내가 보기엔 당시 통역에는 아무 하자가 없었다.


당시 통역은 북측의 최선희 씨가 영어로 통역하고 미 국무부 통역관으로 (2005년 6월 퇴임하기까지) 28년간 한미 정상회담과 북미 고위급 회담에 참석했던 김동현(73)씨와 재미동포 외교관인 줄리 김 씨(줄리 정 지칭)와 내가 메모하면서 확인했다. 또, 메모 내용을 서로 확인해가며 정리한 이상, 통역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