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현송월, 사라진 동료들은 안녕한가요?”

노동신문_김정은 배두산
2019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 하단 좌측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 뒤로 리설주 여사와 현송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당신께 편지를 보내려 결심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호칭이었습니다. 현재 직함이 당 부부장이니 현송월 부부장께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전 모란봉악단 단장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되었습니다. 얼마 전 당신의 최고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낼 때도 호칭이 문제였지요. 여기서도 김정은 위원장, 리설주 여사라고 꼬박꼬박 존칭을 쓰는 자들도 있지만 저는 차마 그렇게는 부르지 못하겠더라구요. 당신이 소속된 조선로동당이 어떤 집단인지 잘 알기에 당 부부장이라는 호칭까지 친절하게 붙여 드리지 못함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아울러 저는 당신이 단장으로 활동했던 모란봉악단의 열렬한 팬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지난 2014년 5월이니 벌써 오래전 일이군요. 전국예술인대회 때 당신은 대좌 군복을 입고 모란봉악단 단장이라는 직함으로 연설을 했지요. 모란봉악단 창단과 활동이 최고지도자의 각별한 관심과 지도 때문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던가요. 김정은 시대를 ‘주체 문화예술의 전성기로 만들자’고 목소리 높이던 당찬 모습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모란봉악단은 그때로부터 공화국의 국보급 보배가 되었지요. 심지어 ‘모란봉악단의 창조 기풍’이라는 시대어까지 제시되며 모범으로 칭송받았습니다.

그때부터였던가요? 당신의 인생 역시 탄탄대로를 걸은 것 같습니다. 3년 전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북한예술단 공연을 위해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라는 직책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었지요. 당신의 그 위세 당당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최고의 VIP를 모신 듯 당신께 머리 조아리던 모습을 보며 조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신을 필두로 한 북한 공연단이 한국에 와서 ‘노래 폭탄’을 터트리고 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평화팔이에 여념이 없던 관계자들은 당신들의 공연이 정치색을 배제한 채 마치 평화를 노래한 것으로 호도했지요. 실제 공연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등 사회주의 우월성과 반미를 외치는 내용이 치밀하게 계산되어 불렸지요.

당신의 위상은 서울 공연 때 그야말로 절정이었습니다. 공연 마지막 순서에 갑자기 무대에 올라 목이 쉬었다면서도 장내를 뒤흔들 만큼 열창을 했지요. 당찬 목소리로 “이 밤이 새도록 통일의 노래가 울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물론 전 현장에서 당신의 공연을 직접 보지 못하고 나중에 녹화방송으로 봤습니다. 북한 음악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팬으로 꼭 당신의 무대를 보고 싶었지만 초청받지 못한 불청객이었지요.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은 감히 참석조차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심지어 공연 암표까지 구해 보려다 사기를 당할 뻔도 했습니다. 그만큼 당신들의 공연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요.

당신이 무대에서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을 선곡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기존 가사인 “한라산” 대신에 “독도”로 개사해 부르며 이 정권의 반일감정 몰이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지요. 그토록 치밀하게 계산된 당신의 노래 폭탄으로 김정은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그를 사랑한다며 팬클럽까지 생겨난 걸 보면 당신의 전략은 대성공인 듯 보입니다.

그 공로 덕분일까요? 아마 지금 공화국에서 가장 위엄있는 여성을 꼽으라면 김여정과 함께 당신이 단연 톱일 듯합니다. 최고지도자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며 호위무사가 되었으니 그보다 더 높은 위상이 어디 있을까요.

2018년 3월 20일 오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예술단 평양공연 실무접촉에서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윤상 음악감독과 북측 대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아직 못하고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당신도 노래를 부르던 가수로서 예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 않습니까?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요?

당신들의 주장처럼 ‘썩고 병든 자본주의’, ‘미제의 식민지로 고통받는 남조선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혁명 정신을 더 깊이 새겼나요? 아니면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바로 이런 거라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나요?

사실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모란봉악단은 어디에 있나요? 또 당신과 함께 서울 공연 무대에 올랐던 가수 송영과 김주향은 요즘 왜 요즘 공연에 나오지 않는지요?

가수 송영은 서울 공연 당시 남한 가요 ‘J에게’를 부르며 주목받았지요. 더욱이 공연 마지막 순서에서는 소녀시대 서현과 함께 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에서 숨은 공로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송영이 북한으로 돌아간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공연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청봉악단의 대표 가수이자 삼지연관현악단 소속인 김주향도 마찬가지지요. 사실 제가 십여 년 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금성학원에서 노래를 부르던 어린 시절의 김주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공화국 최고가수 자리까지 오른 김주향이 갑자기 왜 공연에 등장하지 않는지 궁금해집니다. 그토록 어릴 때부터 육성한 인재가 갑자기 공연무대에서 사라진다면 그건 개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을까요?

그뿐입니까? 모란봉악단의 악장인 선우 향희, 류진아, 김유경, 정수향은 공훈배우 칭호까지 받고 공화국의 영웅이 되었는데, 왜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 것인지요? 그들이 어떤 정치적 문제와 연루되어 무슨 잘못이라도 했던가요? 아니면 숨겨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혹시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남한 공연에서 소녀시대 서현과 두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던 송영이 황색 바람에 물들었다는 이유를 들어 혁명화를 보냈거나 입에도 올리기 싫은 숙청이 된 것은 결코 아닐 거라 믿습니다. 현재 북한의 모든 공연에는 단연 김옥주와 김태룡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만약 송영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다면 서울 공연 때 ‘J에게’를 같이 불렀던 김옥주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녀들 모두가 결혼해서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느라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허황한 답변은 절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의 인권이 이곳에서도 말뿐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일-가정 양립정책을 시행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성이 ‘나라의 꽃, 가정의 꽃’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출산과 육아 때문에 자신의 전문영역 일을 그만뒀다 하면 그건 너무 어이없는 변명이라 생각됩니다.

저의 소원 중의 소원은 반쪽 조국의 곳곳을 둘러보는 것입니다. 보위부 요원들이 친절히 안내하는 평양의 일부 선전장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현장 곳곳을 다녀보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지겠지요? 물론 평양 삼지연관현악단 전용극장에서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보는 것도 빼놓지 않겠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북한노래는 “기다려다오”라는 곡입니다. “광복의 그날 오면 다시 만나자”라는 원래 가사에서 “광복”을 “통일”로 개사해서 부르곤 한답니다. 이 곡을 평양 공연에서 꼭 들어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 소원이 언제 이루어질는지 모르지만,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모란봉악단의 선우 향희, 류진아, 김유경, 정수향 그리고 청봉악단의 송영, 김주향을 무대로 돌려보내 주세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전념하며 한 길을 걸어온 그들의 청춘이 꽃다운 나이에 쉽사리 꺾이지 않도록 길을 열어주세요. 그들이 공연에 등장하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한국에서는 온갖 소문이 난무할 것입니다.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입니다”를 부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던 그 패기와 열정으로 공화국의 예술인들을 지켜주세요. 당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노래하는 예술인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저는 모란봉악단의 한국 공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한 사람입니다. 당신들의 노래에서 정치선전을 빼면 사실 노래가 아니지요. 남한은 사랑, 북한은 사상 빼면 노래가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세계명곡연주를 비롯해 남북한이 정치색을 뺀 합동공연이 분명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이밤이 새도록 통일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단된 조국에서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저 역시 저의 신념대로 일하는 것이니 혹여나 제 글이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지라도 너무 노여워하지는 말아 주세요. 당신을 꼭 평양에서 만날 날을 기대하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