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0시, 올해도 어김없이 평양의 밤하늘은 슬프도록 화려했다. 매년 12월 31일 밤 11시 30분부터 북한에서는 신년경축공연과 국기게양식 그리고 축포발사 행사가 이어진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 대표적인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 2018년 신년경축공연과 축포발사는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에너지난은 거짓말인 듯 화려한 축제의 분위기가 연출되던 때였다. 김정은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모란봉악단 가수들이 장장 90여 분간 공연을 이어갔다. 화려한 레이저쇼가 펼쳐지고 무대와 관객들 위로 드론이 온갖 선전 문구를 그려낼 정도였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디지털 전광판을 활용한 10초 카운트다운은 그야말로 쇼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작년 공연까지 행사 규모와 성격은 매년 축소되는 듯했다. 급기야 2022년 새해를 맞으며 개최한 이번 공연은 역대 신년경축공연 가운데 규모나 내용면에서 가장 수준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현재 북한의 경제위기 상황과 직결된다. 이전 공연과 비교할 때 화려한 레이저, 드론쇼와 같은 무대 구성은 없었다. 모란봉악단의 대표 가수도 등장하지 않았다. 헬로키티 인형과 야광봉을 흔들고, 휴대전화로 공연을 촬영하는 등의 모습도 많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 국경봉쇄가 이어지면서 식량난을 직접 언급할 만큼의 경제위기는 그대로 행사에 반영된 듯했다.
<위대한 내나라> <내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곡으로 시작된 이번 공연은 <그 정을 따르네> <우리 어머니> <친근한 우리 원수님> 등으로 이어졌다. 작년 공연의 선곡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을 정도로 공연은 별 특색이 없었다.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불타는 소원>과 북한 체제를 자랑하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곡은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작년과 똑같이 연주되었다.
그나마 <청춘들아 받들자 우리 당을> <같이 가자요>는 이번 공연에서 처음 선곡된 노래로 주목된다. 2021년 북한 당국이 강조해왔던 바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탄원해 농촌이나 탄광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청춘송가>라는 제목의 이 노래들은 한마디로 청년들의 사상을 강조하며 탄원진출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실제로 2022년 1월 1일자 노동신문은 두 곡에 대해 “당이 부르는 전구들에 탄원진출하여 위훈의 창조자로 아름다운 삶을 꽃피워가는 애국청년들의 기상을 담아내고 경축의 밤하늘에 울려퍼진 청춘송가”라고 평가했다.
이번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4차 전원회의에서도 대학생들의 농촌자원을 언급했는데, 앞으로도 청년들의 농촌탄원에 대한 정책과 선전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민의 환희>라는 노래는 모란봉악단이 랩버전으로 불러 주목받은 곡이다. “우린 누구도 부럽지 않아, 원수님 계시니까”라는 가사 내용은 김정은에 대한 충성도를 잘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성악 중심의 가수들이 이 곡을 부르면서 노래의 성격과 맞지 않는 어색함이 엿보였다.
모란봉악단, 삼지연악단, 청봉악단 소속의 가수들이 굉장히 역동적이고 화려한 무대와 곡으로 공연을 펼쳤다면, 이번 공연은 민요련곡, 아동노래련곡 등 일반적인 북한 음악공연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매년 개최되는 행사를 안 할 수 없어서 형식상 개최했다고 할 정도로 공연의 완성도는 낮았다.
더욱이 2021년 신년경축공연에서는 왕재산예술단의 무용수들이 출연해 그나마 레퍼토리의 다양성이 있었지만, 이번 2022년 공연에서는 그마저도 연출되지 않았다. 관객들의 반응 역시 이전 신년경축공연과는 달랐다. 북한 스스로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힘든 난관에 직면해 있다고 말할 정도이니 신년경축공연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북한경제의 숨통이라 할 수 있던 중국과의 교역이 2년간 전면 중지되었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면서 자력갱생과 간고분투의 정신을 연일 외쳐댄다. ‘자원의 국산화’와 ‘재자원화’는 지금 북한경제의 실태를 고스란히 알려주는 단어다. 대북제재와 수해 그리고 코로나까지 3중고를 겪으며 북한 당국은 끊임없이 주민들에 대한 내부단속과 통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세상과 고립되어 가장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도 “세상에 부럼없어라”고 외쳐대는 노래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2022년, 올해에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해도 될는지, 허망한 생각이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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