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신년벽두부터 대한민국은 여실히 무너졌다. 강원도 고성 동부전선 월북 사건은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국방부는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현재 대선정국에서 간첩사건으로 밝혀지면 정부 여당으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공용의점이 있는 간첩이 귀순을 위장해 철책을 넘어왔다가, 1년 만에 동일한 루트로 다시 돌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거에 미칠 파장은 엄청나다. 그래서일까? 모든 관련 부처가 책임을 떠넘기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공용의점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민의 또 다른 일탈로 몰아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일반인이 민통선을 넘어 GOP와 GP 감시를 뚫고 지뢰와 부비트랩 등이 설치된 DMZ를 넘어 유유히 사라졌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민통선을 넘는 것도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2020년 11월 귀순할 당시 체조선수 출신이라지만 3미터 철책을 훌쩍 넘을 수 있었고, 다시 동일한 루트를 통해 돌아갔다는 것만으로도 대공용의점은 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대남공작원의 명확한 단서로 동일한 루트를 이용한다는 점을 꼽는다. 귀순 당시 교육받았던 침투루트를 인지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었을 때 북한군 3명이 나와서 데리고 갔다는 점도 단순 월북자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현 정권의 북한 눈치보기와 평화쇼가 가져온 처참한 결과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통일부는 앞장서서 전방 지역 철책선을 없애고, 9.19군사합의에 따라 GP를 폭파하는 평화쇼까지 벌였다. 북한의 대남적화는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안보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급기야 이 문제를 탈북민의 부적응 문제로 몰아가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은 바로 이번 사태에 직면한 대통령의 처사다. 지난 5일 대통령이 강원도 고성에 갔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당연히 이 사건 현장에 간 줄 알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강원도 고성에 간 이유는 다름 아닌 남북철도연결 착공식 참석이 목적이었다. 바로 그날 아침 북한이 동해상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곳에서 불과 몇 분이면 닿는 곳에 철책이 뚫렸는데도 어김없이 평화쇼를 즐겼다.
더욱이 새해의 희망을 단 며칠도 지나지 않아 절망으로 만든 건 바로 대통령의 신년사다. 1월 4일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국방력은 튼튼해졌고, 한반도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제는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묻기보다는, 필자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 맞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한반도는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틀림없다. 자기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철책을 넘어 마음대로 오갈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안정적인 관리가 있을까?
이 지면을 빌어 정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국회의원의 역할이 무엇인가. 당장 현장에 달려가서 현장점검과 진상조사를 하는 게 우선이다. 여당 국회의원 수에 밀려 야당 국회의원은 목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여당 국회의원들은 평화쇼에 오히려 저해되는 사안이니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외쳐댄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의 안보가 완전히 뚫려 백척간두에 놓였는데도 여전히 선거에만 관심을 둔다. 대한민국이 없어질 위기인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 어디 있는가. 여당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야당 후보들조차 그 누구도 선거운동 일정을 중단하고 곧바로 현장에 달려간 이가 없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서로가 선장이 되겠다는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준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세우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현장에 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대선 후보자들의 진정성은 바로 이 사안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반대로 현재 대통령은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야당 국회의원들은 정부 부처에 철저한 진상조사와 정보공개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에서 탈북민 지원은 국정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탈북민을 북한의 주장과 똑같이 조국을 등지고 온 배신자로 보기도 했다. 그런 인식 속에서 제대로 된 탈북민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북한에 고향과 가족을 두고 온 탈북민들은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틴다.
하지만 그 그리움 때문에 다시 철책을 넘어 월북하겠다는 마음을 품기란 쉽지 않다. 이 사안을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민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탈북민을 두 번 죽이는 행위다.
백 번 양보해 월북자가 간첩이 아닌 탈북민이라고 가정한다면, 왜 그가 고향이 그립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을거라고만 생각하는가. 그는 어떤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목숨 걸고 대한민국에 왔는데 오히려 김정은 정권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독재정권보다 더 악랄한 권력자들의 위선이 그를 다시 철책을 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는지. 확실한 건 그가 간첩이든 단순 월북자든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건 3월 9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우리의 올바른 선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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