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여성인권대사의 딜레마는?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지난 11월 18일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총회에서 영국 등 유럽연합 25개국이 공동발의한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에 기권했다. 그것은 한국의 좌파정권의 자승자박적 햇볕정책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다.

현정권에 비판적인 일부 언론이나 한나라당의 비판을 제외하고는, 현정권은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은 것에도, 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크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노무현 정권은 또다시 유엔에서 어떤 ‘눈치 없는’ 국가들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세계의 146개 국가가 모인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하여 강제적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에조차 기권한 것은 현정권과 여당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할 수 있다.

북한인권과 관련하여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 그리고 한국의 좌파지식인들의 견해를 요약하면, “자신들은 현재의 북한인권문제보다 더 중요한 미래의 가치를 추구하며, 북한에 인권개선을 요구하면 더 큰 가치가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결정이론의 관점에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중에서 더 큰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고, 그것은 ‘합리적’이라는 것이 이들 주장의 개요다.

한국의 좌파정권의 합리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어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북한인민들과 탈북자의 인권개선보다 더 중요한 ‘미래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과연 이 두 가치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관건이다.

노무현 정권은 아직까지 이 점에 대하여 명백한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유엔주재 한국대사는 ‘기권의 변’에서 “북한인권 개선 노력은 대북정책의 전반적 틀 속에서 여타 주요 우선순위와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히틀러 치하의 나치독일보다 훨씬 열악한 현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해달라는 국제사회의 극히 정당한 요구를 무시할 수밖에 없을 만큼 중요한 대북정책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논리는 합당한가?

그렇다면 현 좌파정권이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세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 북한주민의 생존조건의 향상을 위해 인도적 원조나 경제협력관계 우선, 둘째 전쟁방지, 셋째 남북통일이 그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 쌀, 비료 등과 같은 인도적 원조나 경제개발을 아쉬워하는 쪽은 김정일정권이지 한국이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북한정권이 우선순위를 두어 추구할 가치다.

만일 한국이 인권개선을 요구하였을 경우 김정일이 “인민을 다 굶겨 죽이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한국정부는 국민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북한인민의 생존에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발생하였을 경우’이지, 한국정부가 미리 상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개선요구가 인도적 원조나 경제개발과 같은 대북정책과 우선순위를 다투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을뿐더러, 이러한 원조가 갖는 이중성, 즉 북한인민의 생존권 보장과 함께 북한정권의 연장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북한인권개선에 대한 요구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현정권의 대북화해정책은 북한인민을 대상으로 한다기보다 북한정권과의 야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북한인권개선을 요구하면 북한과의 평화적 관계가 깨지고 결국 전쟁위협이 증대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50여년간 전쟁은 굴종적 평화주의보다는 오히려 북한의 무력통일정책에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방지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좌파정권이 집권한 기간은 지난 8년이며, 이 기간 중에 김정일정권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생존에 급급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방지와 북한인권개선 요구는 배타적 관계일 수 없다.

셋째,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여러 가지 통일론을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김정일정권과의 통일이란 한국의 미래를 가장 확실히 망가뜨리는 길이라는 점이다. 지난 수십년간 그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지구상의 가장 혹독한 파시스트적 폭력을 왜 통일한국에 끌어 들여야 하는가?

필자는 여기서 도덕적인 관점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김정일정권의 예측가능한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 가장 넉넉하게 보아도 김정일 정권은 이제 그 붕괴가 역사적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보아도 좋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과 정권의 수명이 결부된 북한의 경우, 설사 김정일이 천수를 누린다고 해도 그가 생물인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김정일정권의 운명도 그것으로 종말을 볼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언론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이 후계자가 된다면 북한정권도 계속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한국의 좌파들은 상상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습왕조와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 좌파정권의 통일정책은 북한에 세습왕조의 건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말인가? 어느 경우도 넌센스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지난 11월 18일 유엔총회에서 헌법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 속하는 북한인민의 인권개선 요구를 외면한 노무현정권의 핵심인물들, 즉 대통령, 총리, 외무부장관, 통일부장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무지의 소치’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니면 ‘파시스트정권의 부역행위’를 하였다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것이며, 이들에 대한 몇몇 비판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책임’이란 표현도, 실은 ‘파시즘을 묵인, 방조한 행위에 대한 책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노정권의 덫에 걸린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현정권에서 북한인권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직책 중에 거론되지 않은 인사가 한명 있다. 그가 바로 강금실 여성인권대사다.

강대사는 지난 1월 12일 여성인권대사직에 1년의 임기로 임명되었고, 여성인권대사직이란 당시의 신문보도를 보면 “강 전 장관은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인권대사로 정부정책을 외국에 홍보하고,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게 된다”고 되어 있다.

한편 강대사는 지난 11월 15일 여성가족부 주최로 열린 ‘국제인신매매방지 전문가회의’에 참가해서 “이제는 북한인권 문제를 다룰 때가 된 것 같다”며 “정부도 많이 신경 쓰고 다루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대사의 북한인권 관련 발언은 강대사의 소신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부에 대한 판단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강대사의 희망사항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강금실 인권대사가 지난 1월에 임명된 후 무엇을 했는지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 그럴까? 필자는 현재 강금실 대사가 사실상 덫에 걸려 있다고 본다. 그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한 사회에서 음으로 양으로 가해지는 물리적, 정신적 억압에 대한 저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외설 논란에 빠졌던 소설 ‘나에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의 변호 후기 ‘장정일을 위하여’를 읽어본 사람은 강대사가 인권과 자유의 외연에 대하여 가장 넓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강금실인권대사는 현재 국제적으로 인권신장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의 정책을 홍보할 아무런 내용도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인권문제를 제외하고 국제적으로 한국정부의 인권정책홍보를 한다는 것은 코메디에 가까운 어불성설로서 어떤 설득력도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여성인권대사의 입장에서 국제인신매매와 관련하여 현재 탈북여성들이 겪는, 때로는 모녀가 동시에 겪는 성적 인신매매보다 더 절실한 문제가 있을까?

필자는 노무현정부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을 여성인권대사직에 임명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현정권이 계속해서 그녀의 참신한 이미지를 정권과 연결시키려 하였음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정권의 의도이든, 아니든 강금실대사는 자신의 참신한 이미지와 ‘인권대사로서의 침묵’이 현정권의 비겁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북한인권정책을 사실상 옹호 내지는 방조함을 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11월 15일의 발언은 그녀의 이러한 착잡한 상황에 대한 일종의 신음이라고 보인다.

강금실, 북한인권문제에 적극 거론해야

이제 강금실인권대사는 이러한 딜레마를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 강대사가 원한다면 진정한 진보, 진정한 좌파, 진정한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북한인권문제에 대하여 발언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12월 7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북한인권대회’가 그것이다.

여성인권대사로서 인권대회에 참석해야 하며 대회의 주체측은 강대사를 반드시 초청할 의무가 있다. 인권대회에서 강대사는 법률가로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현정권의 북한인권정책을 홍보 혹은 변호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 정권의 북한인권정책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면 역시 그 소신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 옳다. 그러나 어쩌면 강금실대사는 현정권의 북한인권정책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때로는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평면 위에서만 진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강금실대사는 현재의 인권대사 직책을 더 갖고 있지는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정권의 북한인권정책은 그렇게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비판될 것이며, 그 핵심인물들은 과거 친일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책임추궁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강금실 여성인권대사가 이러한 책임을 역사적 차원에서 불필요하게 책임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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