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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ASO'(Anonymous Senior Official), 즉 ‘익명의 고위관리’란 사람인데, 이 ‘ASO씨’는 지난 주, 기자들에게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설명하느라고 무척 바쁘셨다.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해서 핵무기를 만들려 하는 계획은, 영변 원자로에서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여 나오는 플루토늄의 대안으로서, 북한의 이런 불법행위는 1994년 합의각서(Agreed Framework)를 실제적으로 위반한 것이고, 앞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협상에서 크나큰 장벽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언론들은, 이 ‘ASO씨’인지, 여사인지의 말씀과 설명만 믿고, 지난 주 부시 행정부의 중요한 대북정책 전략적 기초를 철저히 까부수기에 바빴다. 이 분들이 숨돌릴 틈도 없이 계속 보도한 바에 의하면, 미국에 대한 또 하나의 위협이 저절로 사라진 것처럼 떠들어 댔다. 첫 번째(1기) 임기중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이 부시 행정부가 또 부풀린 정보로 허풍을 떨었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들을 읽으면 세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북한의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우리쪽 정보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리고 그 정보는 2002년 당시 믿을만한 정보였던가? 둘째, 부시 행정부가 지금 북한과 벌이고 있는 협상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셋째, ‘ASO씨’나, 여사는 부시 행정부를 대변해서 말하는 건가? 아니면, 최소한 최근까지만 해도 부시의 외교정책을 항상 반대해오던 철밥통(국무부) 관리들을 대변해서 말하는 건가?
이중 첫 번째 질문, 북한의 농축 프로그램에 관하여 말하자면, 사실상 눈에 띌만한 새로운 보도는 별로 없었다. 단지 있었다면, 국가정보원장 밑에서 북한문제를 담당했던 조셉 디트러니 씨가 한 말이다: 디트라니 씨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정보에 관하여 전에는 “매우 자신이 있었었는데” 지금은 “반쯤 자신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디트러니 씨는 연방상원 국방분과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2002년 10월 북한정권에게 “우리는 당신들이 우라늄 농축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들이댔더니, 북한은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시인했음을 증언했다. 그리고 디트러니 씨는 “우리는 그후 그 문제를 한시도 등한시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2002년 우리 쪽 정보관계 사람들은 필자에게 말하기를, 1990년 중반부터 북한정권이 해온 (합의문 내용의 파기 위반) 수작에 관한 정보통들의 이견은 전부 해소되었다고 말했다. 정보관계 사람들이 그렇게 의견을 모은 뒤, 다시 딴 이견을 제기했다는 말을 필자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디트러니 씨의 증언이나 ‘ASO 씨’/여사의 브리핑이나, 그 어디에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부정하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정보에 대한 자신”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필자가 헤아리기로는, 이렇게 정보에 대한 자신이 낮아진 연유는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눈에 띌만한 새로운 정보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왜 새로운 정보가 없는가? 이것은 중요한 정보통이나 정보수집 수단을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부시 대통령의 PSI(확산방지 구상)가 주효해서 그럴 수도 있고, 또는 북한의 불법자금 동결이 주효해서 북한이 더 이상 핵물질 자료들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2002년의 우리 정보가 틀렸었다거나 믿을 수 없는 정보였다는 주장을 들어보지 못했다. 디트러니 씨의 증언은 오히려 그 정반대였다. 지난 토요일, 그는 바로 이 점을 공개적으로 다시 확인했다.
더구나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한 말을 빌리자면, “(핵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핵이 없다는 증명은 아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가 없다면, 정보분석가들은 그렇다고 분명히 밝혀야 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중 하나는, 북한이 그런 비밀 핵개발 행위를 꼭꼭 감추는데 능사란 것이지, 핵개발 프로그램이 없다는 말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기 전에는 이전에 모은 정보를 의심하거나 그 정보에 대한 신빙성을 낮추어선 안 된다. 어쨌든 2002년의 정보로 내린 결론이 잘못되었다거나 부풀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를 따져 보자.
‘ASO 씨’나 여사가 브리핑을 한 것은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에 관한 것이지, 2002년에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 아니다. 대저, 모든 군사력 억제협상에서 철저한 검증의 강도(强度)는 상대방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고 속이고 감춰왔느냐에 정비례한다. 북한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아예 지키지 않을 약속을 했다면, 우리는 더 철저하게 검증 시스템을 갖고 파헤쳐야 한다. 이런 경우 얼마나 더 귀찮게 검증 조사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면 틀림없다.
북한정권의 ‘벼랑끝 거짓말’은 이란정권과 함께 가히 이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철저하게 귀찮을 정도로 모든 것을 검증해야 한다.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안보를, 그리고 일본같은 우리 우방의 안보를 북한정권의 말 한 마디에 담보를 내주는 꼴이 된다. 언제부터 북한 말을 우리가 믿게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북한정권은 우리의 이러한 검증에 동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정권이 투명한 검증에 동의한다면 북한정권의 국내 독재체제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니, 북한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북한정권의 협상팀은 이런 위험한 함정을 잘 알고 있다. 우리쪽 협상팀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런 함정을 피해갈 길은 오로지 이런 문제가 있지 않다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아니면, 이런 문제는 문제도 아니니까, 차후 협상에서 조정하면 된다는 어거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ASO 씨’나 여사께서는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에서, IAEA에서 하는 정도의 검증으로도 검증은 충분하다고 우리들을 설득하기에 저렇게 급급하시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 문제를 풀려한다면, 필자가 말한대로 이미 “나쁜 거래”로 판명난 6자회담 타결이 정말 “위험한 거래”로 될 수가 있다. 북한과 직접 거래를 하든, 6자 안에서 거래를 하든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닉 에버슈타트 씨가 말한 것처럼, 6자회담 안에서 성사시킨 나쁜 합의는 양자회담에서 성사시킨 나쁜 합의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우리는 세번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현 부시정부는 이 문제를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인가? 단어 정의에서 보듯이 ‘ASO 씨’나 여사의 정체를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나도는 이런 견해는 관리들의 단순한 복창(復唱)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필자가 아는 ‘익명의 고위관리’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은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믿고만 있을 수는 없다.
부시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하여 직접 해명할 시기가 왔다. 늑장 부리지 말고 빠를수록 좋다. 북핵에 관한 정보에 대하여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시 대통령의 정책 방향은 과연 무엇인지, 확실히 밝힐 때가 왔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30% 정도인데, 그나마 공화당 사람들의 지지도 수직강하를 하고 있다. 만약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파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면 부시 대통령의 지지기반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실용 외교정책”에 열광하시는 좌파 신문편집인들이 그를 지지할 것인가? 필자의 경험을 돌아보면, 부시 대통령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확률이 높다.(2007년 3월 5일 월스트리트 저널)
존 볼턴/ 전 유엔대사(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
번역: 남신우(재미 북한인권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