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누명’ 함주명씨 배상 판결

간첩 누명을 쓰고 공안당국의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가 재심판결로 무죄가 선고된 함주명씨에 대해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와 국가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강민구 부장판사)는 3일 함씨와 가족들이 이근안 전 경감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해 원고들에게 위자료 14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이근안 등 대공수사관들의 불법체포와 감금, 고문 등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이근안은 민법에 따라 국가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함씨가 검찰에 송치되고 판결이 확정된 때로부터 10년이 경과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피고 주장에 대해 “피고들이 소멸시효를 들어 항변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함씨에 대한 재심판결이 확정된 작년 7월까지는 원고들이 피고들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고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큰 반면, 피고들의 그에 대한 채무 이행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며 그 이유를 판시했다.

재판부는 “과거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소멸시효가 완성되긴 했으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피고들이 채무 이행을 거절한 것은 권리남용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원고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인정한 것이다”며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

6.25전쟁 때 의용군에 끌려갔다 1954년 귀순한 함씨는 1983년 ‘위장귀순’ 혐의(간첩죄)로 체포돼 이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998년 특사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근안씨가 함씨를 고문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함씨는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으로는 최초로 재심 결정이 내려져 재심을 통해 작년 7월 서울고법에서 누명을 벗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편 경기도경 대공분실장을 지낸 이근안씨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당시 민청련 의장)과 납북어부 김성학씨 등을 불법감금하고 고문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형기 만료로 7일 석방될 예정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