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들 ‘주체사상’ 무장하면 경제난 개선되나?”

▲ 북한의 내부 소식을 전하는 지하 저널리스트들의 잡지 ‘림진강’

– 최근 중국이 조선(북한)경제를 삼키려 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직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90년대 정치가 불안정해지면서 초래된 사태를 외국의 핑계로 돌리려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장마당 속에는 중국이 이미 들어앉았고, 그 뒤로 한국이 바싹 머리를 들이밀고는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또 ‘대안 조·중 친선 유리공장(과거 일제가 지어놓았던 남포유리공장을 폭파하고 중국의 원조를 받아 새롭게 지은 유리공장)’을 원조하고 그를 선전하는 등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의 전략적 대외정책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이 항상 대국들의 영향권에 들어있는 조선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자각해야 한다는 것인데, 조선은 지금까지도 스스로 자각을 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를 제대로 조종해 본 예가 없다.

특히 일부 낙후하고 보수적인 상층 인물들이 말하듯 호금도(胡錦濤, 중국 주석)가 조선에 대고 “중국처럼 개방하라, 자유 시장을 만들라”고 직접적 정치 압력을 불어 넣으며 모택동처럼 ‘대국주의 정책’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표면에 나서서 사사건건 문제들을 간섭하며 자기 위신을 낮추는 조선식 지도자 작풍은, 지금의 중국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조선에서 벌어지는 정세나 추이를 보면 대세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 신문, 방송에서 선전하는 대로가 아닌 딴 방향으로 말이다.

중국은 대국이다. 개혁이 없는 상태에서의 개성공단과 같은 제한적 경제 특구는 대국 정치가의 기질에 맞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숱한 중국 소매상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것도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중국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노리는 것은 무산광산을 통째로 산다든가 하는 대국적 방식일 것이다. 중국은 지금 자기의 특색을 살려 조선의 어장, 임산, 광산, 탄광, 항만과 같은 자원이나 장기적 이권들을 깊숙이 틀어쥐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한국답게 개성 공단과 같은 가공공업을 우선하는 성향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중국과 한국이 벌써 조선을 경제적으로 분할 통제하기 시작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선행과정이 유인책이 되어 조선의 개혁이 뒤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편으로는 창구 독점을 위한 우리나라 권력자들의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20세기 초엽 같으면 그런 행위자들은 국가가 “매국노”로 규정하였을 것이다. 그래 이런 현실이 “주체 확립”을 피터지도록 부르짖은 당이 바란 결과인가, 국가에 소리 없이 순종만 해 온 인민이 원한 결과인가?

– 조선의 개혁·개방 과제 중에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 마디로 현 시대는 정보화 시대다. 다시 한 번 나는 주장한다. 하루빨리 우리에게 자유로운 연구·토론 마당이 다문(최소한) 경제 부문에서라도 생겨나야 한다고. 중국도 그러고 나서야(경제발전 연구의 자유가 허용된 다음부터) 개혁을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무지몽매한 채 이 시대와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이를 바로 잡자면 먼저 대외관계부터 잘 알고 대외관계 정책을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 대외관계가 개선되자면 무엇보다 간부들과 인텔리들부터 자유롭게 연구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적인 집권층에서는 이들에 대해 “조이라!”는 신호만 기계적으로 내리고 있다. 이 시각에도 간부들의 사상 무장만을 요구하며 목줄을 더 바싹 조이고 있다. 조선의 상투적 사상준비 수법이다.

조선은 새로운 경제특구의 설치라던가 대외관계에 일정한 변화가 요구되면 어김없이 이런 방법을 써왔다. 이는 새로운 경제 및 문화의 변화로 인한 혜택을 기득권의 독점적 이윤으로 만들려는 소집단 이기주의의 파쇼적 정치 산물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 얻은 이윤을 다시 투자해 대중에게 이익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땅속 깊이 감추거나 외국에 예금하고 있다.

간부들이 ‘주체사상’으로 무장만 하면 경제 상태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간부들에 대한 사상교양이 성공했다고 본다면 이제는 간부들을 믿고 그들이 외국의 선진적인 정보들과 경제지식에 접하도록 풀어놓아 주어야 한다. 우리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유롭게 연구·토론 시켜야 한다.

그렇게 못한다는 것을 결국 사상교양이 간부들에 대한 통제수단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사상무장을 아무리 잘했어도 국가는 애초부터 우리 간부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간부를 신임하지 않는 국가를 간부들이 애써 고수할 리 없다. 이제는 국가가 못 한다면 외국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이런 연구토론의 마당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길이고 빠른 길이다.

-그렇다면 지금 조선의 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정부는 지금도 반(反)개방개혁적 노선을 고집하고 있지만, 경제 현실은 그와 무관하게 “장마당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 조선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진실된 힘이다.

개혁·개방이라는 공식적 발표가 없다고 해도 밀수까지 포함한 국제교류는 그런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영업상 이윤을 내기 위한 노력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어 이미 개혁·개방은 밑으로부터 상향 전개되고 있다.

경제적 방법을 부인하고 정치적 방법으로 생산을 이끌던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처리방식은 90년대를 경과하며 완전히 붕괴 되었다. 사회 말단, 기층 조직을 지키던 핵심계급 성원들은 90년대의 마지막까지 ‘사회주의 붉은기’를 지켰으나 결국 그들에게 차려진 것은(남은 것은) ‘장마당 지각생’이라는 딱지뿐이다.

선군(先軍)정부는 결국 ‘장마당 지각생’들인 이 중·하층 간부들과 핵심계급 진지를 버리고 장마당 최우등생들을 선택했다. ‘계급성분주의’로부터 ‘황금만능주의’로 가치관이 변화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싹텄다. 즉 맹아적 개혁개방은 이미 움튼 것이다.

간부들과 인민들의 지향도 ‘돈벌이!’로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으며, 이제는 국가나 집권층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종합시장(장마당)’이 바로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속도가 뜬(느린)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주관적 욕망으로 역사를 늦추거나 앞당길 수는 없다. ‘무지’의 결과 ‘고생’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구체적 예를 제시해 줄 수 있나?

분명한 한 가지 예로 ‘사회주의 건설의 1211고지’라고 칭송하던 김철(김책 제철소)을 보라. 사회주의를 지킨다며 억지로 운영하던 김철에서 철을 생산해도, 그 원가가 국제 가격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그런 방법 이외에는 다른 운영 방식이 없었다.

하지만 장마장이 나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제는 과거와 같은 ‘명분’이 아니라 ‘실리’를 따지게 되였다. 이제는 무산의 정광을 직접 중국에 판다. 우리식 사회주의의 자존심을 버리는 선택을 취할 수밖에 딴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역사란 이렇게 적응하고 변화하여 온 것이 아닌가. 외국들에서는 예전부터 당연해진 경제상식이 이제 겨우 조금씩이나마 통하게 된 것이다. 무지한 조선의 수준은 이렇다.

사실 지금에 와서도 개혁개방의 필요성은 조금 인식했으나 개혁개방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실제적 방도는 다들 모른다. 상층부도 국가도 그 실천에 필요한 구체적 방도나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더 앉아 기다리자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다. 군대나 당, 국가에게만 맡기지 말고 애국자들이 나서서 그를 위한 연구토론의 마당을 자율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라의 경제는 전사회의 움직임을 보아 해결해 나갈 문제지 소집단의 독단이나 주관적 욕망으로 풀릴 성격의 것이 아니다. 애국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다 토론마당에 참가하여 구체적인 합의, 면밀한 집행, 그 총화에 의한 재합의의 길로 질서있게 진입해야 한다. (‘림진강’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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