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아빠’와 ‘고집스런 딸’의 실랑이에 울컥

자정이 훨씬 지난 4일 새벽,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걱정스런 눈빛으로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예정으로 출발했던 ‘구출! 통영의 딸 국토대장정’을 하루 만에 마치고 올라오니 잔뜩 궁금해 하는 눈치다. “몸은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도 전에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에 내려가니 어땠어요?” “어린애들도 함께 걷고 있다던데 어때요?”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늘었어요?”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딸아이의 물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대장정 초반에 사흘간 함께했던 이야기들을 듣고 난 뒤에 ‘통영의 딸’ 구출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딸아이가 엄마의 두 번째 참가기에 귀를 기울였다.


몸이 안 좋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온 엄마에 대한 걱정보다 대장정을 궁금해 하는 딸아이에 한순간 서운했지만 이내 기특한 감정이 들어, 하루 동안 수십km를 함께 걸었던 어린 대장정단과 나눴던 애기들을 들려줬다. 회사에 월차 휴가를 내고 재차 대장정에 참가한 것도 어린 아이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대장정에는 최홍재 단장의 두 자녀인 소원(16) 양과 지원(11) 군 외에도 권민수(12) 양, 이선우(16) 양이 함께했다. 김정일 정권의 인권유린 현장을 맨몸으로 탈출해 지금은 어엿한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나이도 소원, 선우 양과 같다. 


“어린애들이 힘든 길을 함께 하는 것을 보고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그랬다. 난 그들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것이 사선을 넘어 한국에 정착한 나와 딸, 그리고 수많은 탈북자들이 전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딸아이에게 말했다.


“아빠와 대장정 단원들이 혜원, 규원 누나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걸 보면서 힘든 걸 참아요. 꼭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11살, 어린애가 함께 하기엔 너무나 힘든 행군임에도 만신창이 두발을 끌며 꿋꿋이 아빠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기특한 지원이. 


“걷는 것이 정말 힘들지만 밥 먹을 생각으로 걷고 있어요. 오늘은 차를 타지 않겠다고 아빠랑 약속했어요”라며 밝은 목소리로 지원 군과의 대화에 끼어들었던 대장정단의 실무지원을 맡고 있는 권영일 씨의 딸 민수. 


‘가혹한(?) 아빠’와 ‘고집스런(?) 딸’의 실랑이에 울컥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발에 10여 곳이나 물집이 잡힌 딸을 걱정해 차에 타라고 하는 최홍재 단장에게 절룩거리면서도 “아빠, 아직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라며 저만치 앞서 걸어가던 소원이.


“여전히 걷는 것은 죽을 맛이지만 혜원, 규원 언니들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참고 걷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소원이와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대장정단과 국민들을 만나 대장정에 대해 이야기하면 제 모습이 자랑스럽게 생각돼요”라는 단짝 선우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이들 4명이 모두 임진각까지 완주를 다짐하고 있다는 얘기에 놀라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구출 통영의 딸 국토대장정은 10대의 어린이들에게도 국민을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키워주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앞으로 가야할 거리만도 100km 이상이 남은 대장정. 비록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마음만은 더욱 굳건해진 단원들과 소원, 선우, 민수, 지원이의 순수한 모습을 들려주자 10일 서울 대장정은 꼭 함께하겠다고 먼저 약속하는 딸아이가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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