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지키려고 ‘굿바이 평양’ 만들었다”

조그만 캠코더로 평양의 모습을 그려낸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굿바이 평양’이 내달 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에는 2005년까지의 평양과 주민들의 모습, 그리고 양영희 감독 가족들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영화는 베일에 감춰져있던 북한의 수도 평양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다. 평양 시가지와 주민들의 모습이 워낙 생생하게 전달되다 보니 ‘감독이 어떻게 저런 영상을 찍었을까?’라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전작인 ‘디어 평양’이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양영희 감독은 현재 북한 입국이 금지된 상태다. 이와중에 ‘굿바이 평양’까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자 주변 사람들은 양 감독의 평양 가족에 대한 걱정스런 한마디를 건네기도 한다. “평양의 가족들은 무사한가”라고.


데일리NK는 지난 18일 양영희 감독을 만나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와 영화의 주인공 선화에 대한 이야기 등 ‘굿바이 평양’에 대한 후일담을 들어봤다.









‘굿바이 평양’의 양영희 감독은 일본에서 조총련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조카인 선화에게 자신과 같은 이중적인 정체성을 발견,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김봉섭 기자


-전작인 ‘디어 평양’에 이어 ‘굿바이 평양’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작품 활동으로 북한 입국이 금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평양의 가족들은 무사한가?


항상 ‘가족들에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라는 불안감과 걱정이 있다. 하지만 2005년 내가 입국 금지 처분을 받기 전, 오빠(선화 父)에게 선화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빠는 깜짝 놀라면서도, ‘영희는 참 재밌는 사람이다’라면서 ‘그래, 한번 만들어 보라’라고 허락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오빠들 몫까지, 그리고 조총련에 일생을 다 바친 부모님 몫까지 재미있게, 열심히 살아봐라’라면서 ‘우리 가족 중에 너 혼자쯤은 하고 싶은 말 다하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보고, 자유롭게 인생을 살아야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너무 고맙고 걱정이 됐다.


다행히 아직까지 선화와 편지를 주고 받고 있으며 평양의 가족들은 무탈하다.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 결국 가족들이 위험해질텐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이왕 시작된 일, 오히려 가족들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전작인 ‘디어 평양’을 만들고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방북 금지 처분을 받았을 때 조총련에서 사죄문을 쓰라고 통보가 왔었다. 하지만 나는 사죄문 대신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다. 그것이 나의 의사표명이었다.


-왜 하필 ‘굿바이 평양’의 주인공으로 선화를 내세웠는가?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면서도, 조총련의 북한 교육을 받고 자란 것이 나다. 이 같은 나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평양의 ‘선화’라는 분신을 이용해 표현한 것이다.


선화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의 교육을 받고 살았지만 나와 내 부모님이 보내주는 일본 제품들을 사용하면서 자라났다. 하루라도 일본 제품에 영향을 받지 않은 날이 없다. 나 또한 선화를 만날때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들, 외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런 ‘이중적인 정체성’이 나와 선화의 공통점이고, 선화를 내 분신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렇게 ‘이중성’을 갖고 자란 선화가 어떤 가치관을 만들어낼까 궁금했다. 선화는 ‘앞으로 외국어 공부만이 살길이다’라는 나의 조언에 따라 김일성종합대학의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제는 나에게 영어로 편지를 쓴다.


-영화 마지막 부분, 선화가 캠코더를 끄고 연극이야기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 인상 깊다.


그러한 선화의 행동이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 선화는 평범하고 단순하고 정치적이지 않은 어린애다. 연극이라는 외부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캠코더를 꺼야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잔인한 북한의 현실을 말해 주는 것인가? 단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경계심을 가지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가. 그 어린 아이는 그러한 외부 문화에 대한 발언이 자신이나 가족들에게 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아이에게 매번 캠코더를 들이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한 북한의 현실 속에서도 선화는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영화의 엔딩에서 선화의 집이 정전이 되는데, 선화는 이를 보고 ‘영광스러운 정전’이라면서 깔깔대고 웃어넘긴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들의 집이 정전이 된다면 선화처럼 웃어넘길 수 있을까?









▲”폐쇄되고 어두운 북한 속에서도 그것을 이기고 꿋꿋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굿바이 평양’은 그런 사람들의 영화다.”/김봉섭 기자

-암울한 북한을 굉장히 밝게 표현했다.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내 성격이 밝다 보니 영화도 내 성격을 따라 온 것 같다. 나는 북한의 어둡고 폐쇄된 그런 그림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속에서 사는 ‘사람’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을 뿐이다.


정전된 집안에서 선화가 웃는 엔딩장면은 북한 사람들의 현실의 상징이다. 불이 없는 곳에서도 그들은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간다. 나는 영화를 통해 그런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싶었다.


-‘굿바이 평양’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


‘굿바이 평양’은 내 조카 선화에게 보내는 ‘비디오 레터’이다. 이 영화의 시사회, 월드 프리미어 때 내 옆에 선화를 앉혀놓고 같이 보고 싶다. 그런 날이 오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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