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살림 다 포기…”, ‘軍가족 예술경연’이 뭐길래?

김정일은 해마다 군인 가족들의 예술소조 공연에 참석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제963군부대(호위사령부)와 제10215군부대(보위사령부), 제7501군부대(인민보안부) 등 8개 군부대 군인가족들이 참가한 ‘제2기 3차군인가족 예술소조 경연’을 관람했다고 지난 15일 조선중앙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군인가족 예술소조경연’은 예술을 통해 군인 배우자들의 혁명성을 고취시킨다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선군정치’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한편, 군인 배우자들에게 ‘혁명가의 가족’라는 긍지감을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군에 대한 김정일의 ‘관심’과 ‘애착’을 보여줌으로써 군부의 충성심을 유발시키기 위한 체제결속 행사다.


군단, 사령부 단위로 ‘사전 경연’을 통해 공연성원을 선발한 다음 이들은 총정치국이 주관하는 ‘본 경연’에 참가한다. ‘본 경연’에서 선발된 팀은 김정일이 직접 그 공연을 참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공연팀은 모두 군인의 아내들로 짜여진다.


김정일이 직접 관람하는 행사이니 만큼 공연팀으로 발탁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김정일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그 단위 남편들의 출세는 이미 보장된 셈이다. 따라서 무대위에서는 남편의 출세길을 책임져야하는 아내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진다.


경연 공연팀은 해마다 4월에 확정되는데 수개월에 걸쳐 세밀한 준비가 이루어진다. 작품준비와 선정, 경연참가대상자 선발, 집중 훈련 등의 과정을 거쳐 경연에 참여하게 된다. 


첫 출발은 우선 각 대대별로 아내들을 선발하는 것이다. 전년도 10월부터 준비가 시작되어 11월부터는 각 대대별로 경연 참가대상들을 뽑아 여단 또는 연대지휘부로 올려보낸다.


보통 한개 대대에서 적게는 2명, 많이는 4~5명까지 선발된다. 이들은 남편과 자식을 남겨둔 채 연대 또는 여단 지휘부에 모여 정치부 선전원(군관)의 지휘하에 김정숙 생일 기념(12.24) 공연을 벌인다. 12.24 공연은 김정숙 생일 기념 공연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여단 공연성원 선발전’의 의미도 갖고 있다. 판정은 군단지휘부(혹은 사령부) 정치부가 맡는다. 


군단 지휘부의 판정에서 선발되면 군단 대표로 훈련에 참가한다. 이 판정이 있기 전에 군단지휘부에 안면이 있는 참가자들은 ‘줄서기’를 통해 미리 선발여부를 약속 받기도 한다. 훈련을 직접 담당한 선전원들은 고급담배나 양주를 챙길수 있는 기회가 된다.


4.25군단의 선발전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는 탈북자 김수진(가명)씨의 남편 최 모씨는 “누가 누구를 위해 경연을 참가하는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한다. “남편의 출세를 위해 아내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경연 참가를 위해 남편이 있는 것 같다”는 하소연이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아내 김 씨가 경연에 꼭 참가하고 싶다고 하도 졸라 평소에 안면이 있는 군단정치부 간부에게 고양이 담배 1보루를 찔러줬다고 한다.


경연에 선발되려면 첫째가  뛰어난 재능, 둘째가 남보다 빼어난 미모, 셋째가 상급 간부와의 인맥이다.


때문에 선발전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울고 불고 난리를 편다. “저 여자는 되는데 나는 왜 안되는가” “남편 자식 다 버리고 한달 동안 죽게 고생했는데 제발 좀 참가시켜 달라”는 등의 하소연을 하면서 군단 정치부까지 올라가 소동을 피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다.


탈락 여성들이 이렇게 어거지를 쓰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군단 지휘부에 올라가 훈련을 하려면 남편과 자식들의 식사문제와 살림살이, 집에서 기르는 짐승들 관리 문제 등 포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부 여성들은 선발전에 참가하기 위해 친정이나 시댁에 연락해 부모나 형제를 불러 살림살이를 맡기기도 한다.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하는 수 없이 남편이 부대로 출퇴근하면서 살림을 돌본다. 또  군단 지휘부 훈련 중 지휘부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식권이 있어야 하므로 남편의 한달분 식량을 식권으로 바꾼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도 상당하다. 특히 신혼부부나 미취학 아동이 있는 세대는 모아논 재산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다. 


남성들은 아내가 경연에 참가한 것으로 오는 부담감 때문에 정치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기도 한다. 이때 정치위원들은 남성들의 사상성을 지적하며 “가정 혁명화는 아내들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이 문제”라는 식으로 오히려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군단 선발전을 거친 여성들은 군단 대표자격으로 1월부터 4월까지 군단지휘부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맹훈련에 돌입한다. 군단 정치부에서는 이 공연을 위해 작가나 예술인 등 전문가들을 초빙하기도 한다. 군단마다 100명 규모의 합창단조직은 기본 중에 기본이며 깜짝 이벤트까지 창조해내려면 없는 머리도 쥐어 짜야 한다. 이 때 군단 정치위원과 군단장의 아내는 ‘솔선수범’ 차원에서 공연 성원으로 참가하기도 한다.


본 경연에서 작품성을 평가받는데 관건은 공연 성원들의 외모와 기량이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군단 내 총각이나 홀아비들까지 주목을 받는다. 이들이 예쁘고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여성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곧바로 공연 성원으로 차출할 수 있으므로 군단 정치부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예쁘고 재능있는 여성을 데려오라”고 부추킨다.


군단 공연 성원으로 참가해 상급간부의 ‘점수’를 딴 아내 덕에 출세하는 군관들도 적지 않다. 재능이나 인물이 빼어난 여성은 군단 정치위원들에게 좋게 평가 받아 남편의 출세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군단에서는 가끔 미모와 재능이 있는 미혼녀나 이혼녀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용병’들은 별로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군단 공연 성원으로에 낄 수는 있어도 총정치국이 판정하는 본 경연에서는 영락없이 ‘부정선수’로 적발된다. 4월에 들어 진행되는 총정치국의 최종판정 때에는 부정선수를 잡아내기 위한 군단별 경쟁이 본 공연보다 더 치열하기 때문이다.  


‘군인가족 예술소조경연’ 시작 초기에는 작품의 우수성과 참가자들의 예술성 등 합리적인 판정 결과에 따라 순위가 결정됐다. 그러나 점차 ‘너 한번, 나 한번’ 이라는 ‘나눠먹기’ 관습이 자리하게 됐다.


한마디로, 지난 해 공군사령부가 최종 당선었다면, 올 해에는 해군사령부가 최종 당선되는 식이다. “장군님을 너만 모시겠냐. 나도 한번 모셔보자” “실력이라야 종이 한장 차이인데 골고루 해보자” 등의 논리가 군 최고 수뇌부 사이에서 돌고 도는 것이다. 어짜피 등수를 정하는 것은 총정치국의 권한이니 나눠먹기를 해도 뒤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같이 총정치국 판정 성원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아부작전’은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참가한 공연 성원들에게 거둬들인다. 경연에 참가한 여성들은 몇 개월 치 남편의 식량공급표를 써 가며 가족들과 떨어져 농사준비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 거기에 뇌물용 자금까지 바쳐야 하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반 년동안 가정을 버리고 온갖 불편을 참아가며 죽도록 고생해 봐야 결국 차려지는 것은 ‘그릇세트’나 ‘3면 화장대’ ‘고급 옷감’ 정도다. 그녀들에게 남는 것은 “당선되어 장군님을 모시고 공연을 했다”는 명분, 김정일과 함께한 사진촬영이 ‘가문의 보물’로 남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가족 예술소조경연에 군인의 아내들이 몰입하는 이유는 북한 군부내 특이한 문화 탓이다. 북한에서 군인가족들은 하나의 조직체를 이루고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잘 해야 남편도 동료들 앞에서 떳떳하다’는 본능적인 경쟁심이 모든 아내들에게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북한의 여성집단 중 가장 질투심 강하고 싸움 잘하는 집단을 꼽으라면 단연 군인의 아내들이다. 그녀들의 직업이 대체로 교원 또는 여성군관 출신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교원이나 제대군관 여성들은 그래도 북한사회에서 소위 ‘선택받은 여성’이다. 따라서 ‘그래도 내가 교원 출신인데…’ ‘그래도 내가 군관출신인데…’라는 자부심 때문에 그녀들의 경쟁심은 끝이 없다.


또 ‘군관의 아내’라는 특성상 이들은 남성들 못지 않게 거칠고 드세기도 하다. 근무에 여념없는 남편을 대신해 가정살림과 부업을 도맡아야 하는 것이 오늘날 북한 군인의 아내들이다. 이렇게 독립성을 요구하는 생활에 익숙해질 수록 그녀들은 강하고 영악스러운 존재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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