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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무역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겨우 2%에 불과하다.
현재 블랙 아프리카(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을 총칭하는 말)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3억여 명은 하루 미화 65센트 이하의 돈으로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전세계적으로 지난 30여년 간 경제적으로 더 가난해진 유일한 지역이다. 도대체 아프리카는 얼마나 큰 문제를 안고 있길래 이토록 가난한가? 왜 가난에서 쉽사리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7년 간 영국의 정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자로서 아프리카 취재를 담당한 로버트 게스트는 책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나라(원제:Shackled Continent, 족쇄 채워진 대륙)』에서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라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들고 있다.
그는 정글 속에서 반군들과 민간인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 하고, 대학살의 현장과 오지 산간 마을들을 돌고, 유명한 폭군과 그 측근들을 추적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 각 방면에서 아프리카 빈곤의 원인을 찾았다.
저자가 하나 하나 소개하는 아프리카 현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우리는 이 대륙에 펼쳐진 ‘재앙’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파헤친 아프리카 비극의 원인들을 알아보기 전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짚어 둘 것이 있다. 저자가 아프리카인들이 그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본 결과, 소위 집권 계층과 일반인들 사이에 의견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정치 지도자들은 현재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가 거의 전적으로 외부세력에 의한 것이라 주장한다. 과거 식민지 상태였을 때의 상처가 아직도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젠 서방세계가 강요하는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다수의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정부에 더 불만이 많다. 정부의 비효율적 경제정책으로 물가가 불안정해지고, 실업률이 치솟았으며, 경제성장률은 맥을 못 추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수많은 아프리카 현지인들을 인터뷰하고, 각지의 분쟁지역을 찾아다닌 끝에 얻은 결론도 이러한 맥락이다. 즉, 아프리카 빈곤의 원인은 아프리카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저자가 아프리카 빈곤의 이유로 꼽은 것은 정치가들의 실정이다. ‘뱀파이어 국가’, 이 책의 제1장 제목이자 번역본 제목에도 인용된 이 단어는 아프리카에서 정치가들의 해악이 어떤 것인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는 가나의 학자 조지 아이테이가 국민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탈식민지 시대 아프리카 정부를 지칭해서 만들어낸 용어다.
특히 짐바브웨 대통령 로버트 무가베의 잔혹한 정치탄압과 자의적이고 반(反) 시장적인 경제정책 운용은 뱀파이어 국가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먼저 무가베는 정권 획득 후 군인과 경찰들을 동원해 자신과 자신의 지지기반인 집권여당에 반대하는 이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1천만%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에 빠진 짐바브웨
2000년도 총선거 당시 무가베는 무고한 국민들을 감금시킨 상태에서 정치교육을 강제했으며, 야당지지자들에 대한 폭행과 살해를 사주했다.
무가베는 이런 공포 정치로 정권의 안정을 꾀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경제정책을 운용해 나갔다. 그는 시장가격을 통제하려 했고, 환율도 고정시키려 했다. 시장논리를 무시한 이런 정책운용은 짐바브웨 경제에 악영향을 줬고, 여기다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에 조폐남발이 이어지자 짐바브웨는 무려 천만%가 넘는 ‘초 인플레이션’에 빠지게 됐다.
또한 무가베는 백인 소유의 상업 농장을 무상몰수함으로써 짐바브웨에 대한 외국인 투자와 원조를 중단시키게까지 했다. 저자는 짐바브웨의 쇠락하는 경제상황을 두고 ‘역 산업혁명이 진행됐다’고 까지 평했다.
아프리카에서 정치가들의 해악은 무지한 경제정책 운영에만 있지 않다. 그들은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가난으로 몰아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목숨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권력획득과 유지를 위해 정치가들은 뿌리 깊은 종족 간 갈등을 과도하게 부추겨 사회불안을 심화시키고, 내전을 일으키는가 하면, 심지어 인종학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한다.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등은 아프리카에서 ‘종족 문제’가 정치와 뒤얽히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를 잘 보여준다. 6주 동안 80만 명이 살해됐다. 인류사에서 최단기간 최다의 희생자를 낸 이 사건은 당시 집권세력이던 후투족 정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책략이었다.
다수종족인 후투족과 소수종족인 투치족으로 인구가 구성된 르완다에 투치족 망명집단 ‘르완다 애국전선’이 침입해 들어옴에 따라 후투 정권은 지지기반 안정을 위해 조직적인 투치족 학살을 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부대가 동원됐고, 지방공무원들은 투치족 주민 학살 과정에서 지역관리자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하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종학살이 벌어지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이 사태로 인한 부작용은 르완다의 사회에 불안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정치가들의 탐욕스런 수탈행위와 끔찍한 권력투쟁 외에도 아프리카의 숨통을 옥죄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사실 아프리카는 거의 매일같이 끝없는 전란에 시달리고 있다.
끝 없는 전란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1999년에는 아프리카 사람 5명 중 1명이 내전이나 국경전쟁의 영향 하에 있었고, 1990년대를 통틀어서는 11개의 아프리카 국가가 전쟁을 치뤘다. 전쟁이 국가와 개인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정작 문제는 아프리카가 너무 자주 전화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아프리카의 빈곤’이 바로 잦은 전쟁의 원인이라 답한다. 그는 직접 각국의 내전이나 국경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을 찾아가 전투원들을 인터뷰 했다. 그 결과 모든 내전이 하나같이 빈곤으로 인한 것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아프리카에서 실업자들은 직업군인같이 정기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마땅한 직업을 쉽게 찾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풍부한 천연자원은 지역 군벌에게 군인들에게 지급할 봉급을 충당하는 재원이 되어 이런 관계를 심화시킨다.
세계 내전의 4/5가 최빈곤층에서 벌어진다는 세계은행의 분석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렇게 빈곤은 전쟁을 조장하고, 전쟁은 다시 빈곤을 낳는다(세계은행은 내전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매년 2.2%의 평균소득이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아프리카는 쉬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불행이 여기까지라면 그나마 상황이 낙관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아프리카의 성장 가능성을 잠식하는 또 다른 문제들로 에이즈(AIDS),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과 열악하기 그지없는 인프라, 부족한 숙련 인력 등의 문제를 조목조목 열거한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빈곤은 단순히 한두 가지 원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이제 아프리카의 문제는 그 누구도 손댈 수 없고, 어쩌면 현상유지마저 어려운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저자는 단지 아프리카의 깊은 상처를 하나하나 들춰냄으로써 우리에게 검은 대륙의 절망스런 현실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려 한 것일까? 그렇진 않다. 이 책의 제목에서 뱀파이어와 함께 ‘무지개’를 언급했듯, 저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희망을 보았고, 이 땅의 미래에 번영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뱀파이어의 철권정치도 하나 둘씩 끝나가
물론, 그가 조목조목 짚은 아프리카의 깊은 병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인종차별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헌법을 가지는 혁명이 일어났고, 라이베리아의 독재자 찰스 테일러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듯이 뱀파이어들의 철권 정치도 하나 둘 그 막을 내리고 심판대에 서게 됐다.
이런 역사의 흐름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더 나은 삶’에의 열망을 통해 아프리카의 미래를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저자 또한 “세상의 나라들이 산업화를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통한 성공에의 길을 지향하며 저마다 목적한 바를 이뤄나갔다”며, “아프리카도 성공을 꿈꾸고 있고, 그 꿈을 이룰만한 넘치는 열정과 천연자원 등의 ‘잠재력’으로 반드시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륙이 보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제도를 갖추고, 민의가 반영되는 정치를 행하며, 시장경제질서에 보다 빨리 편입되어 선진 기술과 제도를 도입해 나간다면, 이 땅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현재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대륙의 현실, 그들의 아픔을 보다 자세히 알고 싶고, 그들이 어떻게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의 증언과 한 기자의 섬세한 손길이 맞닿은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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