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대회서 경제개선 바라는 ‘주민 희망’ 짓밟지 말아야”



▲ 사진=김일성 전집 72( 1980.8-1980.12, 조선로동당출판사 출판(2007) )

우리의 영웅적 로동계급은 당대회를 앞두고 충성의 ‘100일전투를’ 힘 있게 벌려 생산과 건설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일으켰으며 많은 공장, 기업소들에서 올해 인민경제계획을 당대회전으로 앞당겨 완수하였습니다. 우리의 로동자, 기술자, 과학자들은 당과 혁명에 대한 높은 충성심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력을 시위하는 대기념비적 창조물들을 수많이 일떠세우고 여러 가지 가치있는 창안품들과 과학기술적 성과들을 마련하여 당대회에 선물하였습니다. (이하 중략)

북한 김일성이 36년 전인 1980년(10월 10일), 조선로동당(黨) 제6차 대회에서 한 개회사의 일부이다. 김정은도 조만간 할아버지인 김일성처럼 제7차 당대회서 개회사를 통해 국가운영에 관한 자신의 계획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무려 36년만의 당대회. 북한 주민들에게 당대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또 김정은이 당대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7차 당대회 이후의 북한을 전망하기에 앞서, 데일리NK는 36년 전 인민문화궁전에서 6차 당대회를 방청했던 탈북민 이명수(가명) 씨를 통해 그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6차 당대회에 직접 참석을 한 건지?

그런 것은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인민문화궁전에서 당대회를 방청했다. 정식 대표자들만 ‘2·8 문화회관’(現 4.25 문화회관)에 가서 당대회를 직접 참관할 수 있었고, 나는 방청할 수 있는 인원으로 선발됐다.

– 그렇다면 당대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었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대상이 됐다. 필요한 단위·계층에서 모두 참여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대신 5차 당 대회(1970년) 때와는 다른 부분은 존재했다. 1970년대는 ‘인테리의 혁명화’에 대해서 강조했는데, 이런 부분이 1980년대가 되면 풀어진다. 6차 당 대회 때는 인테리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내세우는 단계였다.

– 방청하는 대상으로 선발됐던 것만으로도 북한 당국으로부터 필요한 계층·인물로 분류됐던 것 같다. 방청하러 갔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있었나?

(웃음)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무슨 기대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당대회 같이 중요한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 부담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당대회가 끝난 후에 발언을 잘못하게 되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감정’ 자체를 개입시키지 않아야 한다.

또한 대회 참가 이후, 각 단위로 돌아가서 ‘귀환보고’라는 것을 해야 했다. 무엇을 듣고 느꼈는지를 보고하는 것인데, 개인의 생각이 아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에서 미리 배포한 자료를 읽어 줘야 했다. 당이 준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 단위 별로 구체적인 실정이 다르기 때문에 단위에 관한 부분만큼은 개인적인 생각을 결부시켜 말할 수 있었다. 물론, 개인적이 생각이라고 해봤자 제한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 10년 만에 열렸던 당대회였는데, 인민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그 무렵은 ‘2차 7개년 계획’이 마무리 단계에 있을 때였다. 그래서 “조금만 힘을 쓰면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일종의 ‘신심’을 가지고서 그 대회를 맞이했었다. 막연하지만 “당대회 이후에는 조금 더 잘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 7차 당대회 공고는 지난해 10월에 있었다. 6차 당대회 때는, 개회를 앞두고 며칠 전에 공고를 했는가? 

당 중앙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6~7개월 전에 공고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6차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두 가지인대, 첫째는 당대회에 참석시킬 참가자들을 선발하는 것이 간단치가 않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는 사상동원 사업 때문이다. 당대회를 앞두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혁신을 일으켜야 했다. 선전선동부가 내려가서 이것저것 지시하고 관철시키는 과정이 적어도 반 년 이상은 필요하다.

– 북한은 당대회를 앞두고 ‘70일 전투’를 시작(2월 중순)했다. 김일성도 6차 당대회를 앞두고 ‘100일 전투’를 지시했는데, 보통 이 기간에 무엇을 하는가?

당대회 전에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사상학습 등을 하는 것이 ‘100일 전투’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김정은은 ‘70일 전투’를 요란스럽게 했는데, 그 당시 ‘100일 전투’는 심하지 않았다. 필요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한테 과업 등이 적용되는 것이지 전 인민을 대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 사진=김일성 전집 72( 1980.8-1980.12, 조선로동당출판사 출판(2007) )

– 김일성은 그 당시 당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당대회 보고를 다 쓰고 현지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했던 연설 등을 보면, 상당한 자신감이 보이는데?

< 프랑스조선친선협회 대표 위원장과 한 담화(1980년 9월 15일). 우리 당 6차대회는 10월 10일에 열리게 되는데 올해 10월 10일은 우리 당창건 35돐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날에 당 제6차대회도 열고 당창건 35돐도 경축하게 됩니다. 나는 이미 우리 당 제 6차대회보고를 다 쓰고 지금은 현지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무렵이면 김일성이 모든 경제사업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김정일은 김일성 옆에서 보고 배우는 정도였다. 김일성은 ‘경제관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 6차 당대회를 보면 지난 10년간을 총화하는 ‘사업총화보고서’가 있다.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되는지?

사업총화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성위원회(구루빠)가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개월 전부터 남포의 우산장이란 휴양소에 모인다. 이들 전문가들이 총화보고서의 초안을 작성해서 당 중앙에 제출하고, 당 중앙은 이 초안을 김일성에게 전달한다. 김일성이 이를 검토·수정지시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김일성의 결정에 의해 최종적으로 사업총화보고서가 완성된다.

– 당 대회를 앞두고 ‘공명주의’가 만연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일성도 직접 비판했는데?

< 전력문제를 원만히 풀데 대하여(정무원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1980년 9월 16일). 돌리지도 못할 공장을 조업했다고 선전이나 하여서는 소용없습니다. 지금 일부 일군들이 당 6차대회전으로 채 완공되지 않은 공장까지 조업식을 하겠다는 하는 것은 다 공명주의의 표현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공장조업식은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조업한 다음날부터 정상적으로 돌릴 수 있는 것만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대동강축전지공장은 당 6차대회전으로 조업식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명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 북한의 체제이다. 즉 그 시스템 자체가 정상적인 사회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놨다. 왜냐하면 경제사업에 앞서 사상사업이 선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작업에 동원되어 있는 노동자에게 선전선동부가 내려가서 이들을 궐기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사기록(최단시간 완공)이 필요한가” 와 같은 식으로 노동자들을 선동해 버리면, 현장에선 고양된 노동자들의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현실적인 상황은 무시하고 “3개월 안에 마무리하겠다, 1년에 걸릴 공사를 반 년 안에 마무리하겠다” 등의 반응이 나오게 된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면 총화를 하고, 과업이 진행된다.

결국, 이런 과정(궐기와 총화 등의)을 거쳐서 (빠른 속도로 과업에 임했으니)일단은 임시 가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운영을 해보면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인 고려를 전혀 하지 않고, 보여주기 식에 급급하여 공사 및 과업을 진행하니 문제가 없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시스템(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것)탓인데, 잘못을 인민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 이런 상황이었는데 정무원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나? 김일성은 지속적으로 정무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무원사업과 다음해 계획 작성에 나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정무원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1980년 10월 1일)을 보면, “정무원은 나라의 경제사업과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에 대하여 당 앞에 책임지고 있다”며 정무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정무원이 잘 돌아갈 리가 있겠나. 정무원은 내각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북한이 만든 경제는 ‘인민경제’니까 인민경제를 책임지는 경제사령부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말로는 경제사령부인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대신 책임만 요구 받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사상사업이 경제사업에 선행하는 곳. 이곳이 북한이고, 북한이라는 체제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예를 들어서 내각이 경제계획을 집행하려고 하면, 당에서 내각에서 집행하는 계획에 대해 사상사업을 하겠다고 한다. 정무원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봤자 당에서 나와서 노동자들을 궐기시키고 동원해버리면 처음에 세웠던 계획과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정무원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정무원에서 누군가 문제의식을 제기하면 ‘보수주의 분자’가 돼서 비판사업을 해야 하니까, 정무원 일꾼들 입장에서도 가만히 지켜만 본다. 당에서는 “우리는 실무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상사업이란 측면에서 이미 모든 개입이 시작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닌 것이다.

– 1981년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6차 대회가 성공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혹시 당대회가 끝났을 때 당에서 특별한 ‘배려’ 같은 것이 있었나?

<김일성은 1981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80년은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가 있은 매우 뜻깊은 해였습니다. 지난해에 우리는 전체 조선인민과 세계 혁명적인민들의 커다란 관심과 열렬한 축원 속에서 당 제6차 대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있었다. 직접 간 사람들, 그러니까 대표자들에게 컬러TV 한 대씩을 다 선물했다. 당시로는 굉장한 선물이었다.

– 당대회가 폐회되고 단위로 돌아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을 것 같다. 어떤 질문이 있었나?

한국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가?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은 한국과 같다. 당대회와 관련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당대회가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인민들은 사실상 많은 관심이 없다. “경제가 좋아져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고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해야 하고 필요한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먹고 사는 것이, 당장의 문제”인대 이외의 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 그 당시 총화보고서를 읽어봤다. 인민들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주민들에게 내용 공유 과정이 있을 것 같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내용을 이해시키는가?

당 조직이 있으니까 근로단체들을 활용하여 전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직장 별로, 이를 테면 사로청 조직, 여맹 조직 등에서 토론 등을 하게 한다. 또한 노동신문이 있지 않은가. 노동신문을 통해서 해당 내용들이 알려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 북한 인민을 위해서 북한 당국이 7차 당대회에서 했으면 하는 총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 김정은이 36년 만에 당대회를 개회한 이유를 ‘김정은 시대의 선포’라는 측면으로 생각한다. 북한 인민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아련한 추억, 김정일 시대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고난의 행군)들을 단절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일종의 과거와의 ‘선긋기’ 차원인 셈이다. 김정은이 어떤 정책 등을 집행하려고 하는데 북한 인민들이 과거에 얽매여 있다면, 김정은 입장에선 어떻겠는가. 앞선 지도자들과의 차별성을 위해 당대회를 개회한 것으로 본다.

그러려면 미래 비전과 같은 북한 인민들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필요할 텐데 지금 북한이 그런 것을 내놓을 형편이 안 된다고 본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인민들이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게 되려면 김정은이 당 대회에서 ‘경제강국을 위해서 노력하자’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사실 김정은이 어떻게 당 대회에서 핵을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ICBM, 4차 핵실험 등으로 정치·군사 강국이 되었으니 이제는 ‘경제강국을 위해서 노력하자’는 선언을 한다면 인민들 입장에선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비록 빈말이겠지만 김정은이 인민경제향상, 민생문제에 집중하겠다고 말하면 인민들 입장에서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정은은 7차 당대회서 ‘7개년 계획’과 같은 경제발전계획이나 1980년대의 ‘10대 전망 목표’ 등을 언급하지는 못할 것이다. 7개년 계획 등의 지표(목표) 등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런 지표를 현재 북한이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4년 반 동안의 김정은 치적 등을 포장해서 무마하려고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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