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부담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간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다. ‘사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폭탄발언이 나온 직후 한미 안보수장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밤 통화를 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통화 이후 각국 안보수장의 해석이 상이해 또 한 번 논란이 일 전망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과의 통화 이후 청와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정부가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특히 맥매스터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언급에 대해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사드 비용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으로 빚어진 단순 해프닝으로 일단락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맥매스터 보좌관이 30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김 실장의 입장과 다른 설명을 내놓으면서 다시금 논란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인터뷰에서 ‘한국 측 카운터파트에 기존 협정을 지킬 것이란 말을 한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이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게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내가 한국의 카운터파트에 말한 것은 ‘어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는 그 기존협정은 유효하며, 우리는 우리 말을 지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즉 미국이 사드 체계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을 부담한다는 기존 합의는 재협상 전까지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맥매스터 보좌관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인정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사실상 미 행정부 내에서도 사드 배치 비용과 관련한 재협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 행정부 측에서 별다른 입장 번복 없이 사드 비용에 관한 재협상 가능성을 공식화한 채 버틴다면, 사드 비용 분담을 둘러싼 양국 간 논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드 배치 자체에 대한 국내 여론도 아직 충분히 통합되지 않은 만큼, 대선을 앞두고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도 크다.
다만 일각에선 김 실장과 맥매스터 보좌관이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을 정제해 전하는 과정에서 발언의 차이가 있었을 뿐, 큰 이견은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현역 군인인 맥매스터 보좌관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 이를 즉각 부정하기가 어려워 어느 정도 수위조절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게 우리 외교 당국의 설명이다. 김 실장 역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일단 ‘기존 합의 재확인’이라는 입장을 전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 재협상 가능성 역시 어느 한쪽으로도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외교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나온 직후, 미 민주당에선 이를 정면 비판하는 내용을 포함한 ‘취임 100일 평가’ 성명을 내놓는 등 미국 내에서도 해당 사안에 대한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사드 비용 관련 발언을 지목하면서 “민간시절의 기질인 예측불가능한 엄포와 허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지속하면서 이 나라에는 당혹스럽고 위험한 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벤 카딘(메릴랜드)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SNS(사회관계망) 트위터를 통해 “한국은 우리의 친구이자 동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분열시켜서는 안 된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북한 위기와 관련해선 더욱 그렇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사드 비용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이 그의 ‘사업가 기질’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취임 이후에도 ‘엄포→위기조성→협상 중 실리 획득’이란 전략을 고수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올 연말 시작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 전에 사드 비용 재협상 가능성을 위기조성용 카드로 삼았을 것이란 풀이도 가능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 비용을 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한국 측에 통보했다”고 밝힌 데 이어, 다음날 워싱턴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도 “왜 우리가 사드 배치 비용을 내야 하느냐. (사드는) 전 세계에서 역대 최고이자, 경이로운 방어 시스템으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우리 국방부는 “한미는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관련 규정에 따라 ‘우리 정부는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는 기본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대응했다. 외교부도 “미 측으로부터 관련 사실에 대해 통보 받은 바 없으며, 한미 간 기존 합의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