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대북 유화책 잰걸음 “식량지원은 아직…”

한국과 미국은 김정일 사후 발 빠르게 ‘새로운 지도체제’를 인정하는 신호를 보내면서 조기 관계 진전을 위해 주력하고 있다. 한미 양국의 ‘새 장(章)을 열자’는 추파에 김정은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된다.


김정일 사후 북한체제에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을 적극 고려하거나 조문정국에 북한을 자극하는 움직임을 자제해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과 현안 해결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우리 정부는 김정일 사망에 대해 사실상 정부 차원의 조의(弔意)를 표하고 일부 민간조문단을 허용해 향후 북한의 대남 비난 가능성을 차단했다. 또 휴전선 등탑 점등 행사도 유보 입장을 취해 북한의 갑작스런 도발 가능성도 일부 차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여야 교섭단체 대표 및 원내대표와 회담을 한 자리에서 “우리가 취한 조치들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다는 것을 북한에게 보이기 위함이고, 북한도 이 정도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선 북한에 대해 ‘적대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대목이다. 


이희호 여사, 현정은 회장 등 민간조문단에 포함될 정부 실무진의 역할도 주목되고 있다. 남측 조문단과 상주인 김정은이나 지도부 간의 면담 가능성도 있어 대남 메시지가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남북 당국의 메시지를 교환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김정일 사망에 따라 형성된 한반도 정치 지형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적극화 시키고 있다. 류우익 통일부장관은 최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중대한 변수가 생긴 것은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도적 식량지원 확대와 이산가족 상봉, 민간단체 인도지원 확대, 남북간 사회문화교류 확대 등이 현재로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카드이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남북간 현안 문제는 서두를 단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기존 정부 입장을 한 번에 바꾸고 식량지원 등을 먼저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정부의 관계 개선 의지를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 뉴욕채널을 통한 북미간 전화통화를 확인하면서 “이 접촉에서 우리측은 영양지원을 위해 필요한 정보와 함께 양자대화 및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요구조건 등을 거듭 밝혔다”고 설명했다.


미북이 중국 베이징에서 15~16일 식량지원(영양지원) 문제를 사실상 합의했지만, 갑작스런 ‘김정일 사망’으로 연내 3차 미북대화가 어려운게 아니냐는 관측을 뒤엎은 것이다. 미 행정부는 김정은을 새로운 리더십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한반도 안정적 관리’를 택해 속도감 있게 논의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식량지원을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사전조치’ 수용이라는 양보(항복)를 받았는데, 이것이 후퇴되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시키겠다는 의도다.


중국은 북한이 김정일 사망을 공식확인한 19일 공산당 중앙위 등 주요 당·군·정 권력기구 공동 명의로 조전(弔電)을 통해 김정일 사망을 애도하면서 ‘김정은 동지의 영도 아래 전진하라’고 밝혔다.


중국은 또 다음날인 20일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해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리창춘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베이징 북한 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21일에도 원자바오 총리, 자칭린 정협 주석, 리커창 상무부총리 등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전원이 조문했다. 또 조만간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단이 방북해 조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식량 원조 계획도 전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의 이같은 태도는 북중간 혈맹을 확인하는 차원으로 북한 견인력을 지속 또는 더욱 확보하겠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역시 체제 안정화가 최우선인 조건에서 고립적인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또 김정일이 사라진 상황에서 강성대국 건설 약속을 지켜야 하는 조건도 김정은의 선택 폭을 제한하고 있다. 북한이 ‘조문정국’에도 한성렬 유엔주재 차석대사를 통해 ‘뉴욕채널’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태도를 짐작케 한다.


북한이 19일 당 중앙위원회 등 공동명의로 발표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보도전문에서도 향후 북한의 태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보도전문에서 북한은 ‘온 민족의 단합된 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만 북한이 조만간 대미, 대남관계를 동시에 개선하고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대남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정은에게 내부결속이라는 또 다른 중요과제가 있는 만큼 남북관계 진전은 마지막에 가서야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낳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역시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우선하고 있어 북한이 입장을 고집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 입장은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결정한 노선이기는 하지만 김정일이 죽은 후 북한체제 내구력은 더 약해졌다”면서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외부 원조가 더욱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은 자신에게 필요한 떡(지원)만 많이 들어온다면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설 수 있다”며 “애도 기간 이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유화적인 대외, 대남정책 기조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반기 동안은 굉장히 유화적으로 태도로 자세를 낮추면서 시험을 해 본 후 하반기에는 다시 대결적인 태도를 변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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