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HEU→EU’로 논점 이동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2단계 제4차 6자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이 북한의 농축우라늄(EU) 계획도 반드시 매듭을 짓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회담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같은 협상 태도는 한.미 양국이 핵무기로 전용이 가능한 고농축우라늄(HEU)을 의제로 올렸던 종전의 입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핵연료로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LEU)까지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발언으로 제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켰던 북한의 HEU 프로그램의 실체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켈리는 “북한에게 HEU 프로그램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자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이를 시인했다”고 공개했지만 당시 켈리의 통역으로 배석했던 통역관 김동현(69)씨는 지난 6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켈리는 북한의 HEU 프로그램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해 논란이 재연됐다.

이런 논란에도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달 10일 워싱턴 포린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미 양자접촉에서 HEU 문제를 거론하고 이 문제가 모두 만족스럽게 해결돼야 한다는 데 매우 강하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사흘 뒤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라늄을 기반으로 한 어떤 무기 계획도 없지만 앞으로 이를 명백히 하기 위해 증거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그렇게 할 충분한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제 미측은 고농축우라늄계획은 물론 저농축우라늄(LEU) 계획도 문제삼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최근 미국의 진보적 성향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한이 연구개발(R&D) 단계 혹은 실험실 수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 혹은 암시를 잇따라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미 국제정책센터의 셀리그 해리슨 선임 연구원은 이달 1일 한겨레에 기고한 ‘북한은 왜 경수로를 바라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연구하는 실험실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미 시카고대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출간된 ‘악의 축의 발명’이라는 책에서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의 언론 인터뷰를 인용, “북한에게는 전국 각지의 크립톤 85 방출이 정상적인 환경 수치를 넘어서지 않을 정도의 소량으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 양국이 농축우라늄(EU) 문제를 제기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북한의 농축우라늄 계획을 뒷받침하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된 이후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기술적 측면에서 EU는 HEU와 LEU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HEU와 LEU의 차이는 오십 보 백 보에 불과하다.

원자력 전문가에 따르면 우라늄 농도가 0.7% 수준인 천연 우라늄 광석을 정련해 농도를 3∼4%로 정제하면 핵연료용으로 쓰이는 저농축우라늄이 되고, 여기서 농축 공정을 몇 차례 더 순환시켜 90%까지 끌어 올리면 핵무기에 사용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이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한.미 양국이 핵연료 자급을 위한 저농축우라늄 계획까지 문제를 삼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북한이 주장하는 핵연료 자급을 포함한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권에 대한 불허 입장을 좀더 강화시킨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만약 이런 의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당연히 강력히 반발할 것이 예상되고 6자회담의 전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미 양국이 EU 문제로 논점을 이동시킨 배경에는 북한을 압박하는 동시에 퇴로를 열어줌으로써 6자회담의 타결을 용이하게 만들려는 포석이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원자력연구센터의 강정민 박사는 “북한은 농축 우라늄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원심분리기 수십 기 규모의 실험실 정도의 농축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북한이 무기와 관련없는 농축 시설을 인정하는 것은 회담 타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분석은 김계관 부상이 지난 13일 CNN과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과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끈다.

한 정부 당국자도 이와 관련, “진실은 반드시 공방을 파헤쳐야 해법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언급해 평화적 핵이용 권리와 핵폐기 범위만 합의되면 EU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전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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