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공조 속에서 북한이 보란 듯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었던 배후로 중국 기업과 개인이 지목됐다. 한국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국방문제연구센터(C4ADS)는 19일 중국 회사 248곳과 개인 167명, 선박 147척 등이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한 채 북한 기업 등과 직간접적으로 거래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핵 개발과 미사일 재료로 쓰일 수 있는 알루미늄이나 텅스텐 등의 물질까지 북한에 팔아왔던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두 싱크탱크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 ‘중국의 그늘 속에서(In China’s Shadow)’는 1년 6개월간 북한의 무역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제시하면서 “현재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 기업과 합법적으로 무역 활동을 하는 북한 기업 상당수가 제재 대상 기업의 소유이거나 계열사 등의 형태로 엮여 있다”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이를 “사실상 ‘제재 회피 창구’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재 대상 목록에 오른 북한 기업들이 실소유권을 숨기고 무역을 지속하기 위해 유령 회사를 설립하거나 단계별로 별도의 중개인을 고용하는 등 제재를 회피할 창구를 마련해오고 있다. 선박에도 인공기가 아닌 선박 등록국의 국기를 달아둔 채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 해외 기업들과 무역 거래를 지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中기업, 北에 핵개발 물질 팔고 달러 유입까지…해킹부대 지원도”
이 같은 북중 대규모 거래의 중심에는 중국 동북부에 있는 ‘랴오닝 훙샹(Liaoning Hongxiang)’ 그룹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단둥훙샹산업개발공사는 북한에 알루미늄 잉곳과 산화 알루미늄, 암모늄 파라텅스테이트(APT), 삼산화텅스텐 등을 지속 수출해왔다. 수출된 물질들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해당 공사의 경우, 2011년 1월부터 2015년 9월 사이 산화알루미늄 25만 3219달러(약 2억 8000만 원)어치를 두 번의 선박 수송으로 북한에 팔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 안보리는 이미 2006년 결의안 1718호를 채택하면서 북한 핵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과 기술의 이전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바 있다. 올해 초 채택된 결의 2270호도 북한 핵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품목(dual use goods)’을 금수(禁輸)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미 중국 기업체는 그 전부터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 북한에 핵 개발 물질을 제공해온 셈이다.
공사는 북한에서 석탄 등 천연자원을 지속 수입하면서 북한에 달러를 공급해오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2015년 9월까지 해당 공사와 북한의 교역량은 총 5억 3200만 달러(약 5953억 원)으로 확인됐는데, 이 중 대북 수입이 3억 6060만 달러(약 4034억 원)으로 수출액 1억 7140만 달러(약 1913억 원)의 세 배에 달한다. 보고서는 “(이 정도 규모의 거래라면)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물론 핵무기의 설계, 제작, 실험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에 충분하다는 추정 결과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관련 교역을 위해 훙샹 그룹은 최소 10척의 선박을 동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올해 3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가 채택된 직후인 4월까지도 그룹이 동원한 선박들은 북한 남포항과 중국 룽커우항을 정기적으로 오고간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현재 공사가 경제범죄 혐의로 중국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는 20일 중국 언론을 인용해 “랴오닝(遼寧) 성 공안기관이 공사 관계 부문 책임일꾼들이 무역활동 중 엄중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것을 확인하고 증거를 확보한 후 회사의 책임일꾼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훙샹 그룹은 2009년 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와 합작으로 랴오닝 훙바오산업개발공사를 세우기도 했다. KNIC는 일찍이 북한의 외화벌이의 주요 창구로 알려져 유엔 안보리와 한국 정부의 제재 대상 목록에 올랐지만, 중국은 이에 아랑곳 않고 공사를 매개로 전기설비를 비롯한 각종 물품을 북한에 수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훙샹 그룹이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부대 ‘121국’의 비밀 사무실에도 투자를 지속해온 정황이 포착됐다. 121국의 비밀 사무실은 중국 선양시 칠보산호텔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훙샹 그룹이 이 호텔을 북한과 합작회사 방식으로 공동 운영하면서 지분 30% 가량을 투자해온 것. 칠보산호텔은 중국계 실리은행(sili bank)의 인터넷 계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은행의 인터넷 도메인마저 훙샹 그룹 산하 부동산개발업체의 소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제재 효과 미비 이유? 구멍 많았던 탓…中 기업 대상 2차 제재 불가피”
그간 중국이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성실 이행’ 등을 재차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이 김정은의 핵개발 및 통치자금에 쓰일 투자를 진행하는 것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대중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를 낸 두 싱크탱크도 북한이 작금의 대북 제재를 회피하는 과정에서 많은 중국 기업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 이들 중국 기업에 대한 2차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보고서는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을 준수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북한을 오가는 화물에 대한 검사와 같은 행정적 조치에 그쳤다”면서 “중국 정부는 북한의 2270호 안보리 결의 위반과 연루된 중국 기관에 대한 사법 조치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한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면서도 북한 경제에 필수적인 무역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많은 중국 기업이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면서 “그동안 북한에 대한 제재가 생각보다 효과가 없어 보였던 이유는 너무도 많은 공간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 연구위원은 이어 “2005년 마카오의 델타방코아시아가 김정일의 사금고 노릇을 하다 제재를 받은 지 6개월 만에 사실상 파산한 것처럼 북한을 돕는 해외 네트워크는 약간의 정보가 알려지면 와해되기 쉽다”면서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감시와 제재 명단의 신속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고명현 동 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번 연구가 북한의 제재회피를 가능하게 하는 중국 기업과 개인들에 대한 2차 제재의 당위성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도 두 싱크탱크는 “대북제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제재 대상인 북한 기업이 식별되는 즉시 신속하게 금융업계에 통보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이름을 바꾼) 북한 기업도 추적할 수 있다”면서 “미국에서는 ‘애국법 311조’와 같은 현행법을 적용해 자금세탁을 담당하는 북한의 주요 은행이나 금융기관을 제재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다른 나라의 국기를 단 북한 선박을 더욱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와 별개로 개별 유엔 회원국에서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개인이나 기업 명단을 기존의 제재 대상 명단에 추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