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野)4당이 어제(29일)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현인택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은 해임 사유로 현 장관이 취임 이후 남북 장관급회담을 한 차례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등 남북대화에 무능함을 보였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빌미로 5·24 대북조치를 주도해 남북대결을 조장했으며,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의 개성공단 방문을 불허했다는 것을 제시했다.
야4당의 이번 해임 건의안은 현 장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심판하겠다는 정치적 속내가 담겨 있다. 야4당은 장관 해임 사유로 남북관계 단절과 경협사업 차단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임 논리는 인과관계가 잘못되었을 뿐더러 사실관계마저도 정확하게 담지 못하고 있다.
현 장관 재임기간 남북은 북한의 군사도발로 인해 전례 없는 안보적 위기를 겪었다. 현 장관 취임 석 달 만에 북한은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그리고 다음해 3월에는 천안함 폭침사건을 일으켰고, 11월 들어 연평도 포격을 감행했다. 이후 남북관계 주무 장관에게 주어진 국민의 요구는 북한과 장관급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의 군사도발에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확실한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혹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화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가이다. 무력도발에 대한 사과나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북한과 회담을 연다면 이것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국민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남북 장관급회담 성사와 장관의 능력을 결부시키는 것도 전략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이다. 국회가 이러한 여론몰이를 계속한다면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제한시키게 된다.
현 장관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빌미로 5·24 대북조치를 주도해 남북대결을 조장했다는 비판도 선후 관계의 모순이 작용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천안함, 연평도 군사도발을 감행했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악화되었고, 천안함·연평도 문제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 되었다. 국민 70%가 대북지원을 위해서는 북한의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조건에서 야권이 5·24조치를 비난하는 것은 국민 정서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 장관 해임건의안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정권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될수록 한국에서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내부 분열이 심각해진다는 것을 북한 정권에게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여론의 비판에 떠밀려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남북관계 주도권은 북으로 넘어가게 된다. 북한 정권이 군사도발 카드를 쓸 경우 최소한 내치에 유리할 수 있지만 남북관계에서는 큰 화를 불러온다는 교훈을 얻어도 모자랄 판에 장기적으로 남북관계에도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면 야4당이 말하는 한반도 화해와 평화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수용은 현재 조건에서 불가하다. 이명박 정부는 남은 집권기간에도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북한 정권의 잘못된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대북정책 목표로 설정해서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사실 남북관계에는 오랜 잘못된 관행이 있어 왔다. 북한정권은 군사도발을 감행하고 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대화공세를 감행했고, 한국정부는 북한의 대화제의에 호응해서 남북관계를 원점으로 복귀시켰다.
북한은 과거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버마 아웅산테러 사건,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등 군사도발을 감행한 후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며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화공세를 전개했다. 한국정부는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장기화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한 간 인적·물적 협력을 증대시키는 것이 한반도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아래 북한의 대화공세에 호응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대화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끝났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과 북한의 잘못된 행태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바꿔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북한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정부가 남북관계 경색국면 장기화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현 상황은 북한정권의 대남행태를 바꾸어내려는 한국정부의 대북전략과 한국정부를 자국의 전략적 의도에 순응시키려는 북한정권 사이의 대립국면이다. 따라서 정부는 해임사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를 거부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해임건의안 수용은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켜서 남북관계의 원칙을 재정립한다는 정부의 정책목표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정권에게는 대남전략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는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는 정치적·정략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다뤄야할 문제다.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현 장관을 재신임해서 천안함, 연평도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대북제재를 지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가할 것이고 천안함, 연평도 문제에 대해 사과하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유지해야 한다.
북한정권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해 반성하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그렇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은 한국정부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꾸며낸 1차 도발이고 연평도 포격은 북침을 위한 계획적 2차 도발이라는 괴변을 반복한다. 북한 정권의 잘못된 행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경색국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천안함, 연평도 사과와 재발방지 확약을 요구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북한과의 대화 자체보다는 북한이 어떤 자세를 갖고 대화에 나오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금 당장의 대화나 교류협력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올바른 관행과 원칙을 세우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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