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장관님, 금수산-대성산-신미리 차이를 아시나요?

▲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김일성의 시신

13일 평양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묘역 참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묘소는 금수산기념궁전, 대성산 혁명열사릉, 신미리 애국열사릉이다.

금수산 기념궁전은 김일성의 시신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그의 관저로 사용됐다. 금수산의사당은 ‘주석궁’으로 불리다가 1995년 7월 사망 1돌을 맞으며 ‘금수산 기념궁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금수산의사당은 평양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약 8㎞ 정도 떨어진 모란봉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3년 3월 착공되어 1977년 4월 15일 김일성(金日成)의 65회 생일을 맞아 준공하였다.

94년 김일성 사망 후 97년까지 3년간 증축되었고, 김일성 시신처리와 궁전 건설에 8억9천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김일성 사망후 김일성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김정일은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치된 김정숙(김정일의 생모)곁에 김일성을 함께 모시자는 주변의 의견을 일축하고, “생존에 사용하시던 금수산의사당에 모시고 궁전으로 꾸려라”는 지시를 내려 개건 확장되게 되었다.

주석궁으로 사용될 때는 유럽식 5층 복합 석조건물이었으나, 시신이 들어서면서 개조되어 중앙 홀 가운데에 김일성 입상을 세웠고, 궁전 앞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을 상징하여 너비 415m(4월 15일), 길이 216m(2월 16일)의 콘크리트 광장을 조성했다.

1998년에는 궁전 주변 100여 정보에 수목원을 조성하는 등 규모를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지하 100m 이상 깊이로 평양 지하철과 이어져 있으며, 주변에는 생존에 김일성을 경호하던 호위총국이 30여 개의 검문 초소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호위대장으로는 김영남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동생 김두남이 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6년부터 일반주민들과 북한을 찾는 외국인들의 참관코스로 정해져 헌화하고 참배하는 곳이다.

▲ 100여명의 항일빨치산들을 묻은 대성산열사릉

대성산 혁명열사릉 – 혁명전통교양의 장소로

대성산 혁명열사릉에는 과거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함께 한 130여 구의 시신이 묻혀있다. 진짜 유해가 묻혀있기도 하고, 유해를 찾지 못한 묘소는 반신상을 세워두고 있다.

평양의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위치하고 있다. 1975년 10월 13일, 처음 건설될 때 묘소 앞에 반신 석고상을 세웠다가, 10년이 지난 1985년 10월 광복 40돌을 맞아 묘역이 확장됐고 석고상도 동상으로 교체됐다.

신미리 애국열사릉과는 대비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품위있게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 묻히는 사람들도 정해져 있다.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을 위주로 안장했기 때문에 여기에 묻힐 사람들도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다. 김일성 사후에 묻힌 사람은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오진우와 최광 두 사람뿐이다.

북한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에 어디에 묻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품위가 결정된다. 만약 할아버지가 대성산 열사릉에 묻혔다고 하면 3대, 4대까지 국가에서 돌봐주는 제도가 있어 대단한 명문가문으로 된다.

똑같이 항일운동을 했다 해도 국내파, 연안파, 갑산파 등 종파로 몰린 사람들은 어디에도 그 종적을 찾아볼 수 없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소위 혁명 1세대, 즉 북한의 수뇌를 이루었던 핵심인물들이 묻힌 곳으로 북한주민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곳이다. 평양시를 방문하는 북한의 청소년 학생들과 근로자들의 교양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 400여명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애국열사릉

신미리 애국열사릉 – 대남전략에 이용

애국열사릉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과 저명인사, 남한에서 월북한 인사들의 묘가 있다. 약 400여 개의 비석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평양에서 서북쪽으로 교외 형제산구역 신미동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총 27정보,

묘역입구에는 “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 건설, 나라의 통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다 희생된 애국열사들의 위훈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고 적힌 추모비가 있다. 민노당 관계자들이 방북, 이 묘역에 참배했다.

묘비에 생전 모습을 새기고, 그 아래로 이름과 생전의 신분, 생년월일이 적혀 있다. 1998년 4월 김정일의 지시로 천연 화강석에 고인들의 생전 모습을 새겨 붙이도록 지시함에 따라 묘비에 첨부됐다.

대표적인 인사들로는 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 초대 북한 교육상이었던 백남운, 무임소상을 지낸 국어학자 이극로, 김책의 변호인으로 광복 후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허헌, 교육상 허정숙 등이 이곳에 묻혀있다.

또한 비날론을 발명한 이승기 박사와 잠학을 연구한 계응상 박사 등 학계인사들이 있고, 소설가 한설야와 이기영,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제작한 이찬,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창작한 조기천도 묻혀있다.

애국열사릉에는 홍명희와 홍기문 부자(父子), 최동오와 최덕신(父子), 허헌과 허정숙과 같이 부녀(父女)도 같이 묻혀 있다. 또 남로당 지하당 총책 김삼룡, 지리산 빨치산 대장 이현상, 진보당 당수 조봉암, 통혁당 사건의 김종태 등도 그 대열에 끼어 있다. 대남전략에 활용됐던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 죽은 김삼룡, 이현상, 조봉암, 김종태의 진짜 시신이 북한에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육체적 생명은 죽었지만 수령이 안겨준 ‘정치적 생명’은 살아 조국에서 영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빈 묘를 만들어 놓고 있다. 빈 묘를 만들어놓고 앞으로 북한이 통일하면 그들의 시신을 찾아 묻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묻혔다가도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리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전 농업위원장 김만금의 시신이 이곳에 묻혔다가, 김정일이 식량난 책임을 김만금에게 뒤집어 씌우면서 부관참시를 지시, 묘가 파헤쳐지기도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과연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영진 기자(평양 출신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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