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진중문고 대북·안보관 관련 서적 한권도 없다

군 장병들에게 정서 함양과 교양 증진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진중(陣中)문고’가 군 복무에 필요한 국가관과 안보관 확립과는 무관한 도서 일색으로 선정돼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진중문고가 베스트셀러나 흥미위주의 서적이 주류를 이뤄지다 보니 일제 치하 독립운동이나 6.25전쟁과 관련된 책 한권도 찾아보기 어렵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진중문고는 장병들이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생활관(내무반)에 비치한다. 때문에 장병들이 휴식과 흥미를 겸할 수 있는 소설이나 자기계발 관련 책들이 다수를 이루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 절반이 조사결과를 믿지 않고 의혹세력을 휘둘린 상황을 접한 국방부가 내무반에 안보관을 키울 책 한 권 비치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최근 신세대 장병들의 의식 조사에서도 안보 개념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훈처는 올해 초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최근 안보현실 인지도 조사결과 ‘북한 적화통일전략을 모른다’고 답한 사람이 69%, 안다고 답한 사람이 31%라는 조사결과를 제시하며 안보 교육 강화의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일부 신세대 장병들은 ‘KAL기 폭파와 천안함 폭침사건은 남한의 조작’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은 국군이 먼저 도발해 발생한 일’이라는 왜곡된 정보들을 비판 없이 수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예비역 정훈 장교가 ‘6.25 전쟁은 북침 전쟁’ 등의 게시물 올리는 ‘종북카페’를 운영한 사례도 있다.


국방부가 제공한 진중문고 리스트에 의하면, 2차 핵실험과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있었던 2008~2010년 사이에 선정된 109권의 진중문고에는 대북 및 안보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서적은 단 한권도 없었다. 대표적으로 ‘파피용’ ‘그림으로 읽는 생생 심리학’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 ‘만화로 읽는 알콩달콩 경제학’ ‘유머가 이긴다’ 등 자기계발·흥미 위주의 서적들만 선정됐다.


특히 가장 최근인 2011년 하반기 진중문고에도 ‘감동의 습관’ ‘고구려’ ‘세 얼간이’ ‘무소유’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버킷리스트’ 등 같은 류의 책 24권이 선정됐다. 때문에 진중문고 선정 방식과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 문화정책과에 따르면 ‘진중문고’는 온·오프라인의 월별 베스트셀러 목록 및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우수도서 자료목록을 기초로 1차 선정돼 각 군에 통보된다. 1차 선정된 서적들은 각급부대 장병의 의견·호응을 토대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방부는 각 군의 우선순위를 고려해 선정 예정도서의 2배수 가량을 2차 대상도서로 선정한다.


이후 진중문고는 국방정책자문위원, 국방부 정훈문화자료심사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선정되며 1년에 상반기,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각 생활관에 제공된다. 


이러한 선정과정서 장병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교·안보 관련 서적을 국방부 차원에서 일정량을 선정하는 ‘쿼터제’를 도입해 장병들의 안보관 확립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3차 북핵 실험 등 도발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서 이러한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육군 정신교육 정책자문위원인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진중문고는 국방을 위해 복무중인 장병들이 읽는 만큼 일정비율은 대북관·안보 확립을 위한 서적으로 선정해야한다”면서 “진중문고 중 50%정도는 안보서적으로 선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병들은 여가시간에 책을 많이 보는데, 안보 관련 책이 꼽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면서 “방송의 다큐멘터리·교양 프로그램 시청률도 3,4%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방송사들은 항상 관련 방송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해군 2함대 소속 한 중령도 “진중문고 성격상 장병들의 관심사와 흥미를 무시할 수 없지만 최근 북한의 도발이나 핵실험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올바른 안보관이나 대북관을 심어줄 수 있는 서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장에선 외교안보 관련 서적이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강한데 찾아보면 장병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그런 서적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장병들의 흥미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방부 문화정책과 담당자는 “진중문고는 장병들의 정서함양과 교양증진이 목적”이라면서 “장병들은 안보 관련 서적을 잘 읽지 않을 뿐더러, 장병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진중문고의 의미가 퇴색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무적으로 안보 관련 책을 장병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때문에 전역 후 장병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교양·자기계발 서적 혹은 소설 등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선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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