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協 정일용 회장, 독도는 ‘다케시마’인가?

▲작년 12월 납북자 가족들이 선상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1일 <납북자가족협의회>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동안 변변한 사무실 한 칸 없이 ‘곁방살이’를 해오다 이제야 조그만 현판을 내건 것이다. 개소식에 참석한 납북자 가족들은 사무실을 마련한 기쁨보다는 여전히 외로운 투쟁을 계속 해야 한다는 서러움에 가슴을 쳤다.

같은 날, 북(北)에 있는 납북자들을 두 번 죽이고 남(南)에 있는 가족을 두 번 울리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이 공교롭게도 그 ‘가해자’가 되었다. 그는 모 TV방송에 출현해 ‘북쪽에 거주하는 남쪽 출신의 사람들 중에 스스로 월북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보도할 때 용어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때 남측 방송기자들이 ‘납북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북측이 취재활동을 방해하고 급기야 공동기자단 전원이 철수하기까지 했던 전대미문의 언론탄압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의견이 바로 이것이란다.

정 회장의 발언에 대해 납북자 단체인 <납북자가족모임>은 “최소한의 상식마저 저버린 채 북한노동당 대변인인양 북한 당국의 행태를 두둔하고 있다”고 강력히 규탄하면서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객관적 진실 외면하는 記協 회장의 망언

방송에서 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납북자다’ ‘아니다’ 상반된 입장이 대립돼 있고, 또 확실한 근거도 없다면, 꼭 그 사람들이 납북자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

그는 “우리는 대개가 이런 분들(국군포로, 어부)이 납북이 돼서 강제로 억류돼 있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데요”라고 운을 뗀 후, 자진해서 북으로 간 남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로 옮겨가고 있다.

정 회장은 <연합뉴스>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기자이다.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을 때 확실한 근거 없이 어느 한 쪽의 용어를 일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그의 논리는 일면 투철한 기자정신의 발로로 보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묘한 속임수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이때 정 회장의 논리에 따르자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독도가 ‘한국 영토이다’ ‘일본 영토이다’ 상반된 입장이 대립돼 있고, 또 확실한 근거도 없다면, 꼭 그 영토를 ‘독도’라고 부를 근거가 없다.”

이제부터 한국의 기자들은 기자협회장의 논리에 따라 독도를 일방적으로 독도(獨島)라고 표현서는 안될 것이다. 일본식 표현인 다케시마(竹島)를 병기하던지, ‘북위 37도 동경 132도 상에 위치한 섬’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독도는, 정회장의 표현대로, ‘상반된 입장이 대립’되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정회장에게 묻는다. 정 회장은 독도를 우리땅이라고 부르지 않을 텐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신중하지 못하다고 말할 것이며,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어느 한국 방송기자가 보도하자 일본 당국이 취재활동을 방해했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텐가.

기자가 ‘정치적 고려’까지 해야 하나?

‘불가지(不可知)의 상황에서는 어느 것도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기자정신을 정 회장은 납북자 문제에 악용했다. 하지만 납북자 문제는 ‘불가지’의 영역이 아니다.

이재근씨와 같이 납북되었다 가까스로 북한을 탈출해 다시 남한으로 돌아온 납북자들이 여러 명이다. 이들을 통해 충분히 실상이 알려졌다. 매년 <통일연구원>은 ‘북한인권백서’를 통해 납북자 현황을 발표하고 있으며, 납북자 단체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도 수 차례 납북자 문제 해결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발언에 따르면, 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부적절하고 분별없는 용어를 사용해 온 것이다.

자, 그럼 정 회장에게 다시 묻는다. 물론 남북 당국자간의 협상 과정에는 용어 선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기자까지 그러한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하나? 결국 기자정신에 투철하지 않은 사람은 ‘사실을 사실로써’ 보도하고 발언한 이번 공동취재단의 기자들이 아니라 <한국기자협회> 회장인 정일용 기자 자신이다. 기협 회장이 이 정도 수준이니 후배 기자들이 도대체 뭘 보고 배울까? 그저 ‘북한 눈치보기’나 배우란 말인가?

기계적 중립은 ‘중립 가장한 위선’

최근 들어 <한국기자협회>는 일선 기자들의 최대 조직이라는 외형과 걸맞지 않게 친북반미 성향을 두드러지게 보여왔다. 강정구 교수의 직위해제에 반대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을 “전쟁기계”라고 표현했으며, 북한의 위폐 문제가 “미국의 조작이자 정치공세”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북한의 위폐문제를 비판한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성을 찾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표현은 중립적이며 신중하다 할 수 있는가?

기자의 중립이란 기계적 중립이 아니다. 모르면 찾아내고 밝혀내서 진실을 전하는 것이 기자다. 알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 분명히 드러난 사실까지 외면하면서 그것을 중립으로 치장하는 사람은 기자가 아니라 위선자다. 북한과의 화해가 우선이라는 개인적 신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기자증을 반납하고 정치판에나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정 회장은 자신의 실언에 대해 어설프게 변명하려 들지 말고 납북자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정 회장의 용단을 기다린다. 후배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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