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神’에 등극한 김정일…北核폐기 확실한 성공조건은?

역시 김정일 식 ‘배짱’을 만천하에 과시한 한판이었다.

김정일은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대화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은 북·미양자회담의 성과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2박3일 동안 전세계의 관심을 평양에 집중시켜놓고, 원자바오가 갖다바친 각종 ‘북중 수교 60주년 기념품’은 잔뜩 챙기면서, ‘6자회담에 복귀할지 말지는 미국 하기에 달렸다’는 식으로, 주변국의 기대를 옆발로 ‘퉁-‘ 밀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하고 싶은 말은 다했다. 김정일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조·미(북미) 양국의 적대적 관계는 양자협상을 통해 평화적 관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90년대 초 제1차 북핵 위기 때부터 계속 틀어온 20년 묵은 레퍼토리를 또 한번 틀면서 공을 미국 코트로 넘겨버린 것이다.

어느 신문은 김정일이 이번에 2천만 달러를 챙겼다고 보도했다. 말 한마디로 2천만 달러를 그냥 주운 것이다. 이쯤 되면 김정일은 거의 ‘언신(言神)’의 경지에 올라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또는 창피당했다는 사실을 감추려는듯, 김정일의 말 한마디에 ‘열광’한다.

중국 신화통신은 원총리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의 틀 안에서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북한의 발전에 적극 공헌하기 위해 다른 각 분야에서도 북한과 공동노력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환영했다.

김정일은 또 이번 2박3일 회담에서 주변국에 줄듯말듯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말해, 언론으로 하여금 “그간 6자회담 절대 불참 입장을 보여왔던 북한이 북·미양자회담을 전제로 한 조건부 참여방침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는 ‘애절한 희망’이 섞인 해설기사를 쓰도록 만들어 주었다. ‘햇볕’의 잔영이라도 쬐고 싶은 일부 ‘남조선 언론’의 마지막 희망의 불씨까지 완전히 발로 비벼 끄지는 않았다.

6자회담은 원래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 위해 성립된 국제회담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늘 그랬지만 한미일중러는 북한으로 하여금 6자회담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회담에 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허비해왔다. 도대체 ‘돈도 벌고, 시간도 벌고, 핵 업그레이드도 하는’ 김정일의 이 힘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배타적 우위 아젠다(agenda) 선점’ 전략 때문이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터진 이후 국제관계에서 배타적 우위의 힘은 핵무기와 기축통화(달러)로 대표된다. 김정일은 핵무기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계속 동북아 아젠다를 선점하며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정권생존을 위해 국제사회의 ‘북한 이슈’를 계속 선점해둘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모든 전략전술의 기초는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두들기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이슈화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강점은 ‘군사 이슈’, 즉 핵과 미사일이다. 따라서 김정일은 생존하기 위해 핵무기의 ‘유지·보전·업그레이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한이 생존하려면 ‘개방’을 국가 대전략으로 선택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개방을 선택하면 2300만 주민들은 살지만 김정일은 죽는다. 김정일은 2300만 주민들의 생명보다 자신의 전체주의 수령독재정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독재’란 바로 이런 것이 독재다.)- 따라서 개방할 수 없다. 그래서 핵 이슈가 계속돼야만 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김정일의 핵 이슈를 무력화(無力化)하는 것, 다시 말해 김정일의 핵 이슈가 ‘배타적 우위에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 하는 이슈는 두 가지다. 그것은 ‘북한인권’과 ‘체제개방’이다. 김정일 입장에서 북한 이슈가 핵, 미사일에서 인권과 체제개방으로 옮겨가는 상황이 가장 불리하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모든 남북교류를 다 끊어버리겠다고 협박했던 것이고, 노 전 대통령에게는 개혁개방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6자회담에서 북한 핵폐기 프로세스는 계속 진행하면서, 동시에 한미일중러는 북한을 개방하도록 강제하고, 유엔과 국제 언론과 인권NGO는 북한인권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김정일의 핵이슈를 배타적 우위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김정일 총감독이 올리는 3막 5장의 ‘핵 무대’ 옆에 6막 10장짜리 ‘개방 무대’와 ‘인권 무대’를 동시에 올리는 것이다. 개방과 인권 무대는 2300만 북한 인민들을 살리는 무대이며, 더욱이 ‘인권 무대’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최고의 정통파 연극이다. 이것이 김정일의 핵이슈를 무력화하는 정도(正道)이며 동시에 북한인민을 살리는 상도(常道)이다.

한·미·일·중·러 등 각국 정부는 핵문제 해결 노력(트랙 A)과 함께 반드시 ‘북한 개방화 전략’(트랙 B)이라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으로 가야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점을 깊이 알아야 김정일의 ‘핵무기 유지 보전 업그레이드 전략’을 제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핵이슈는 외연이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김정일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는 이번 김정일과의 면담에서 ‘돈 주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북한 개방화 전략을 위해 한국과의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그랜드 바긴(grand bargain)이 성공하려면 ‘그랜드 바긴 자체'(플랜 A)만으로는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반드시 ‘보조 전략'(플랜 B)을 가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플랜 B는 플랜 A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플랜 B’는 북한을 개방화하는, 다시 말해 북한에 2300만 북한주민이 주권자가 되는 개방정부를 세우는 전략을 가동하는 것이다. 이 ‘플랜 B’ 작업은 외교부·국가정보원 등 정부 관계당국이 주축이 되어 거시적인 로드맵부터 미시적인 경로까지 철저한 준비를 한 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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