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6·25참전용사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싸웠다”






▲박격포부대병장으로 참전한
 英군 프랭크 팰로우 씨ⓒ데일리NK
“중공군은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 당시의 전투는 매우 끔찍했었다. 나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싸웠다.”


프랭크 팰로우 씨는 6.25 전쟁 당시 영국군 참전용사다. 박격포 부대 병장으로 개성 근방의 사미전 전투에 참전했다. 현재는 한국전참전용사회회장을 맡았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구성한 ‘6.25전쟁 60주년기념사업회’가 초청한 영국군의 방한을 직접 주선했다. 


60년 전의 전투였지만 팰로우 씨는 아직도 선명하게 사미전 전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사미전 전투에서 우리는 중공군과 싸웠다. 그들은 여러 차례 우리가 차지했던 언덕을 함락시켰다가 다시 후퇴했다. 수차례의 육박전이 벌어졌고 가장 큰 싸움은 이틀 동안 계속되기도 했었다. 그들은 자기 전우들의 시신과 부상한 전우들을 싣고 돌아가면서도 어느 샌가 다시 부대를 재편해서 쳐들어왔다. 중공군은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었다. 당시의 전투는 매우 끔찍했었다. 나는 용맹해서, 승리를 위해서가 아닌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싸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내가 사미전 전투에서 살아남은 것은 영국군 연대에 소속된 한국인 부대원들 덕분이다. 17, 18세의 젊은 한국 부대원들은 포탄, 물, 음식, 연료가 가득 든 몸집보다 더 큰 가방을 매고 산을 오르며 우리 부대가 위치한 곳으로 날랐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들은 단 한번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며 한국인 부대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당시의 한국상을 묻자 그는 “당시 한국은 완전 폐허였다. 한국 주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었고 고아들은 넘쳐났다. 영국군 연대는 한국 고아들을 입히고 먹여주다가 나중에 적절한 기관에 넘겨줬었다”고 말했다.


팰로우 씨는 그 폐허였던 한국이 이렇게 성장한 것은 마법(Magic)같다고 감탄했다.


그는 “나는 1953년 한국을 떠났는데 그 때와 지금은 비교할 수조차 없다. 한국은 마법 같은 나라다. 나는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으로서 한국에 올 기회가 많았지만 한국은 올 때마다 변화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폐허였던 국가가 지금은 모범 국가가 됐다. 나의 희생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큰 전투를 치르고 난뒤 병사들이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나는 매일이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오래전에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살기보다는 오늘을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외상후스트레스엔 시달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전참전용사회회장으로서 특히 빅토리아 훈장을 받은 조윌리엄 스피크맨 씨의 방한을 도왔으며 영국에서도 정기적으로 스피크맨 씨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를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방한한 영국군과 그 가족들은 총 216명으로 현재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은 끝난 상태이지만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야기된 유럽의 항공대란으로 인천 송도의 쉐라톤호텔에서 머물며 출국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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