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뉴스테이츠맨 ‘영원한 도망자 탈북여성’ 밀착 소개

▲ The New Statesman 웹사이트

영국의 좌파 성향의 정치 주간지 뉴스테이츠맨(The New Statesman)은 26일 발간호에서 북-중 국경 지역에 숨어사는 탈북자들을 심층 취재해 소개했다.

주류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발전, 인권,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잡지는 1913년 창간돼 현재 매주 3만부 정도가 판매되고 있다.

뉴스테이츠맨의 린지 힐섬(Lindsey Hilsum) 기자는 북-중 국경에 인접한 지린성(吉林省) 근처에서 탈북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조명했다. 힐섬 기자의 기사를 요약 게재한다.

#1. 인신매매된 탈북여성

중국과 북한 사이에 놓여있는 두만강은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는 북한 쪽 땅을 응시했다. 국경 경비병들의 나무 오두막에서는 난방을 하지 않는지 연기도 나지 않았다. 바깥은 영하 16도였다. 늑대를 닮은 개 한 마리가 눈 속에 발자국을 남기며 강기슭을 따라 어슬렁댔다.

거기에는 사람 발자국도 있었다. 아마 경비병이 순찰을 돌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얼어 죽거나 총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 필사적으로 밤새 탈출을 시도한 탈북자의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북한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그들의 나라를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중국의 산 속에 숨어든 탈북자들은 농장 일거리라도 얻어 식량을 구하기를 원했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교회와 연계되어 중국을 통해 결국은 남한까지 갈 수 있게 된다. 특히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가혹하다. 굶어 죽느냐, 중국에 팔려 가느냐. 둘 중의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

만주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의 농부들은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지역의 처녀들이 결혼하기를 꺼린다. 그들은 대안으로 근처 옌지에서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주변으로 활동하는 인신매매단으로부터 북한여성을 사들인다. 한 자녀 낳기 정책으로 중국 내에 전체적으로 젊은 여성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탈북 여성 신부들은 확실히 증가하는 추세다.

운전사는 우리를 태우고 중국의 황량하고 눈 덮인 내륙으로 15마일을 더 달려갔다. 회색빛의 하늘 아래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단지 몇 마리의 소 들 뿐이었다. 때는 아침이었으나 마을은 조용했다. 녹슨 경첩을 단 나무 창문틀이 흔들거렸고 담장에는 난방에 쓸 통나무 더미가 눈에 덮여 있었다.

우리는 얼어있는 진흙길을 걸어서 초라한 벽돌집을 향해 걸어갔다. 노란색 비닐 장판이 깔려있는 내부는 나무를 지펴서 난방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의 여성이 남자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머리를 한 가닥으로 묶고 있는-그 중-어린 여성은 예쁘장하게 생겼다. 5살짜리 아들과 놀고 있을 때는 미소도 지었다. 운전수는 그녀가 130 파운드(한화 23만원)정도의 가치가 나간다고 그전에 귀띔해 줬다.

나이 든 여성은 52파운드(한화 10만원)로 그녀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가임기간이 지났으므로 훨씬 더 쌌다고 한다. 그녀의 일은 요리하고 들에서 농사짓는 것이다. 그 여성은 본인의 이름을 말하는 것도 사진 찍히는 것도 꺼려했다.

“만약 북한 여성이 ‘나 여기 있소’ 말 한다면 ‘나는 배신자니 날 죽이시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젊은 여성은 말했다.

나이 든 여성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북한에 있을 때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죽었고 나라에서는 나와 아이들을 수용소로 보냈다. 아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이 길거리에 버린 음식물을 주워 먹었다. 쓰레기를 먹고 병이 난 것이다. 죽기 전에 닷새 정도 병원에 있었다. 아들이 죽는 것을 직접 봤다. 당시 아이는 17살이었다. 이제 북한에는 아무 가족도 없다.”

탈북하게 된 그녀의 이유는 간단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북한을 탈출했다. 남편도 아들도 죽었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중국으로 나왔다”

팔려 가는 인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었다. “북한에 있을 때 ‘중국에 가면 중국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다’라고 누군가 말해줬다. 그래서 두만강을 건너 투먼에서 3일간 한 가족과 함께 살았다.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지만, 그들은 나를 산둥으로 데려가 팔았다”

북한 남자가 한족 가족에게 그녀를 팔았으나 중국말을 하지 못한 그녀는 점점 더 비참해졌다.

“3개월을 거기서 살았지만 한족 가족들 중 누구와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게 음식도 많이 주지 않았다. 나는 그냥 밭에서 일만 했다. 그 다음에 누군가 나를 여기 이 가족에게 데리고 왔다. 그 사람이 나를 얼마에 주고 팔았는지는 모른다. 그 사람들은 중년의 나이였다”

그즈음에서 운전사가 가로 막았다. “팔렸단 말은 하지 마시오. 결혼했다고만 말하시오” 운전사는 우리에게 중국으로 갓 넘어온 북한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형제들과 가끔씩 국경지대에서 탈북자들을 태우고 내륙으로 데려오는 일을 했다.

어린 여성은 얘기하기를 꺼렸다. “이 마을에서 5년을 살았다. 공안에 잡힐까봐 두렵다.” 우리는 카메라로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 그녀는 우리 카메라를 가리키며 “나는 텔레비전도 두렵다”고 말하며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임신 6개월이었을 때 공안에 잡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중국 가족이 뇌물을 먹여서 잡혀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공안도 내가 임신했기 때문에 풀어준 것 같았다.”

남한에 도착한 탈북자들은 임신한 여성이 북한으로 보내졌을 때 강제로 유산 당하거나 심지어는 태어난 아기를 죽이기까지 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국경지역의 많은 중국인들은 민족적으로는 한국인들이지만 평양의 정권은 민족적 순결성에 사로잡혀 중국인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불순하다고 믿고 있다.

“경찰 차 소리만 들으면, 내 심장은 쿵쾅거린다. 그들이 들어온다면 바로 도망 치던가 숨는다” 어린 여성은 말했다. “경찰에 잡히지만 않는다면 내 아들과 여기에서 조용하게 살겠다. 중국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잡히지 않고 지금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2. 북송 후 탈출한 가족

작은 마을의 한 아파트에서 엄마, 아빠, 10대 아들과 딸로 구성된 한 가족을 만났다. 이들은 북한에 있는 친척들에게 식량을 갖다 주려다 붙잡힌 적이 있었다.

‘김 씨’라고 하는 한 조선족 기독교인이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왔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만 빼면 우리는 여기서 잘 지낸다”고 아이들의 엄마가 말했다. 김씨는 이 가족에게 가끔씩 음식과 생필품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이 가족은 5년 동안 북한에서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 다녔다. 아버지가 일했던 광산에 식량 배급이 끊겨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날짜나 자세한 내용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으나 그들은 2005년경에 중국으로 넘어 왔다고 말했다.

“대략 1년 동안 산속 텐트에서 살았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들은 기독교 신자들을 만났고 개종도 했다. 그러고 나니 고향의 친척들에 대해 걱정이 됐고 다른 기독교 신자들과 함께 먹을 것을 가지고 다시 국경을 넘어 들어가기로 했다.

몇 일만에 그들은 북한 당국에 잡혔다. 그들의 친구들은 심문 과정에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고백했고,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혔다. 엄마와 딸은 풀려났으나 아버지는 (기독교인라는) 자백을 거부했다. 아들은 고향으로 이감되었다.

“나는 20일간 수감되었다. 거기에는 150명이 150평방미터 크기의 큰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남자들은 그 감방에 있고 여자들은 벽에 둘러쌓인 긴 복도에 수감되어 있었다. 음식이 나왔으나 충분치 않았다. 수감자들은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약은 없었다. 나는 감방에서 죽어 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봤다”

그가 어떻게 풀려났는지, 또 가족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 가족은 이제 김 씨가 그들을 베이징으로 몰래 보내 남한으로 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고향의 친척들에 대해서 물으니 엄마와 딸은 울기 시작했다.

#3. 산 속에 숨어사는 탈북가족

외곽 마을에서 우리는 눈을 헤치며 또 다른 탈북 가족을 만나러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들은 지난 봄에 중국에 왔으며 산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약재로 쓸 두꺼비를 잡아서 식량과 바꿔 먹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부모들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야기들을 했다. 아들은 지난해 굶어 죽었고 그래서 남은 13살짜리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왔다.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을 때 그 딸은 유일한 장난감인 강아지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중국에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북동 산악지역에, 그리고 마을들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숨어서 지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들은 영원한 도망자 신세로 낙인 찍혀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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