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외교관 눈에 비친 북한 ‘韓流’…”北통제 허무는 요소”

북한 주재 영국대사로 평양에서 근무한 존 에버라드 씨가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누비면서 만난 주민들의 생활을 전하는 책(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책과함께刊)을 최근 펴냈다. 2006년 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평양에서 근무한 저자는 북한 주민들과의 교류를 토대로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 삶의 방식 등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저자는 ‘은둔형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소개하는 1부 ‘내가 본 북한, 사람, 삶’에서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책은 4부로 되어 있다. 


에버라드 씨는 북한의 일상, 직장, 여가, 결혼, 외모 가꾸기 등을 기술하면서 “그들의 삶은 이 나라의 핵정책이나 다른 어떤 중대한 국제적 쟁점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 동료,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나 삶을 구성하는 일상의 온갖 관심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는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북한 정권의 ‘정보 통제와 사상 교육’에 대한 부분을 꼬집는다. “북한에서 정치는 지구 상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상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면서 “사람들은 매주 정치적 모임에 참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김 씨 부자의 생일 등 축일이나 휴일이면 정권이 지원하는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북한 정권은 자기네 사회를 범죄 없는 사회로 묘사하기 좋아하지만, 절도·소매치기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국가는 이 흔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그다지 보호해주지 않는다”면서 “(내가 본 바로는) 북한 사람들은 절도와 소매치기 말고도 낮은 수준의 부패라는 문제에 끊임없이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평양을 돌아다니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한류(韓流)’를 직접 체험한 부분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에버라드 씨는 “평양 교외의 모퉁이에서 디브이디(DVD)를 공공연히 교환하는 젊은이 무리를 마주친 적이 있다”면서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디브이디 상자에 붙은 남한 스타들의 사진을 똑똑히 보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민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정전이 돼 DVD를 꺼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면서도 “(내가 만난 북한 주민들은) 적발될 경우 투옥되어야 했지만, 보통은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무마할 수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에버라드 씨는 평양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한국 말투’가 유행이라고 소개, 어떤 학부모는 딸에게 걸려온 아이 친구 전화를 바꿔주면서 “서울에서 전화 왔어”라고 농담했을 정도라고 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은 정보 흐름을 통제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한국 드라마 DVD를 북한의 통제장치를 허무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이 서울 아파트가 평양 아파트보다 훨씬 넓고 전자기기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최근에 북한의 외교관계가 틀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이나 정권을 위협하는 요소였다”고 전했다.


에버라드 씨가 서방 외교관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북한 시장 여러 곳을 방문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비밀경찰’로 불리는 보위부 요원들이 곳곳에서 외국인들을 철저히 감시하는 데서도 그의 호기심이 발동한 결과다.


그중에서도 그는 언젠가 ‘개구리 장마당(메뚜기장)’의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카메라를 꺼내 들어올리는 사이에 시장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에버라드 씨는 “몇 분 뒤에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나타나 카메라를 보자고 했다”면서 “카메라 디스크에 담긴 사진을 두 번씩 훑어본 뒤에야 안심하고 나를 보내줬다”고 소회했다. 


그의 북한 자전거 관광에서 이런 식의 ‘경고’를 받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북한 안내원이 에버라드 씨의 카메라를 빼앗아 혹시 북한에 불리한 사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본 후 돌려주며 “좋은 것만 부탁합니다”고 신신당부하곤 했다고 한다.


또한 “(한 번은) 자기 영어 실력을 자랑스러워하던 조선인민군 장교는 사진 찍기 규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름다운 것만, 부디 아름다운 것만 찍으십시오(라고 말이다)”면서 “빈곤하거나 불결하거나 황폐한 대상(북한 어디에나, 하물며 평양에도 수두룩한 피사체)을 찍다가 발각된 외국인은 카메라에서 눈에 거슬리는 이미지들을 지울 때까지 군중에 에워싸여 있었다”고 덧붙였다.


2부에서는 평양의 외국인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방 사람들은 평양 생활이 끔찍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는 “분명 문제가 많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그럭저럭 지내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3부를 통해서는 북한 정권의 탄생, 6·25전쟁과 기근, 기근 이후의 삶 등을 다루고, 4부에선 세계 각국이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 왔으며, 대북 접근법들이 왜 실패했는지, 미래에는 어떻게 북한에 접근하는 것이 유효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에버라드 씨는 현재 북한의 상태를 ‘상처가 곪아 터지기 직전’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고수하고 있는 국가의 모습과 다르면서 북한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국가상”이라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이 통제불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방치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